하이퍼 리얼리즘 나팔관 조영술 후기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모든 게 무섭거나, 슬프구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난임병원에서의 첫 번째 관문은 ‘나팔관 조영술’이었다. 정식 명칭은 ‘자궁 난관 조영술’인데, 이름도 생소한 이 시술은 자궁 안에 조영제를 투입해 나팔관이 막혀있는지를 확인하는 시술이다. 조영제가 잘 흐른다면 뚫려있는 것이고, 막혀있다면 압력을 줘서 용액을 흐르게 해 뚫어 버리는 시술인 것이다. 내가 인간 변기가 되는 것인가. 내 나팔관은 변비인가 아닌가. 살면서 변비였던 적은 없었으니, 내 나팔관도 시원하게 조영제를 통과시켜 주겠지?
후기를 찾아보면 ‘생리통의 오만 배 고통이다’ ‘지옥을 맛봤다’ ‘부작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등등 차라리 임신을 포기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 무시한 얘기들이 많다. 경험자로서 나의 한 줄 평은 ‘생리통의 대략 다섯 배 정도로 지옥의 입구에서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을 수 있다’이다. 하지만 내 자궁 안에 무언가 아주 깊숙이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을 잃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꼭 이 시술이 아니어도 언제나 그렇듯 속옷을 입지 않은 원피스 형태의 병원복을 입고 검사대 혹은 시술대에 누워 치마를 휑하니 올리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일은 참 난감하다. 여러 번을 반복해도 여의사 앞이어도 끝까지 적응되지 않는다. 나도 내 질 입구를 벌려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무리 의사여도 그렇지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매번 민망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아래가 휑해도 부끄럽지 않을 때는 변기에 앉아 있을 때뿐 아닌가. 화장실에서는 오롯이 혼자이고 변기는 말이 없으니까.
대망의 시술하는 날. 병원에 도착해 역시나 팬티를 벗고 원피스 형태의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입었지만 입지 않은 느낌, 속옷은 입어도 불편하고 안 입어도 불편한 옷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투명 원피스도 아닌데 휑한 아래가 괜히 또 혼자 머쓱했다.
살아오며 아파서 혹은 아플까 봐 여러 병원에서 다양한 검진을 했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검사로 뼈도 들여다보고, 내과에서 내시경으로 위와 대장도 들여다보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자궁과 질, 난소까지 들여다보고. 그리고 이제는 난임병원에서 나팔관을 들여다볼 차례다.
임신은 무엇일까? 남편과 내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만나 15년 후 우리의 난자와 정자가 나팔관에서 만나게 되는 일. 조영술은 무엇일까? 그 두 세포가 잘 만나게 하기 위해 지금 내 나팔관에 길을 닦아 놓는 일. 우리가 결혼할 줄 몰랐고, 임신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고... 시술실에 들어가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뼈에서 세포까지 15년을 넘나드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시술실의 대기 의자에는 나 외에도 두 명의 여자분이 앉아있었다. 오늘 우리는 모두 같은 시술을 받을 것이다. 간호사가 다가와 차례대로 각자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물어보았다. 의도치 않게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의 이름과 나이, 생일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하필 그날 생일이었다. “어? 오늘 생일이시네요?” 다른 한 분이 말했고, “생일 축하드려요!” 내가 말했다. 초면에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며 우리는 각자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러 들어갔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인데,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눕는 건 마찬가지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금방 끝난다며 인터넷의 후기처럼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의사들은 항상 안 아플 거라고 말한다. 아플 거라고 하는 것보다는 나은가. 모르겠다. 깊게 호흡을 했다. 질 입구에 묵직한 기구가 들어왔다. 아프다기보다는 많이 이상하고 불편했다. 어쨌든 의사 말이 맞았다. 아프지는 않았으니까. 이어 그 안으로 조영제가 투입되었다.
아. 시작이구나!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얼굴에 식은땀이 나고, 생리통 다섯 배 정도의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의사 말이 틀렸다. 많이 아팠다. 조영제가 들어오자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의 정도보다 그 느낌이 아주 생경하고 당황스러워서 눈이 감기고 약간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이러다 진짜 응급실 가는 건가 싶었다. 눈이 감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눈을 뜨라며 호통을 쳤다. 응급실은 가지 않게 되었다. 고마운 꾸짖음이었다. 시술이 끝났다.
혼미해지지 않았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면 모든 게 무섭거나 슬펐을까. 다행히 내 나팔관은 왼쪽 오른쪽 어느 쪽도 막혀있지 않았다. 막혀있었다면 더 많이 아팠을 거라고 했다. 그랬다면 정말 지옥에 갈 수 있겠구나 싶다. 가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임신을 위해 나도 남편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후 두 번의 숙제에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인공수정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