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기 딱 좋을 때

임신하기 전 꼭 주문해야 하는 것

by 임희정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명량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이틀 전 주문한 엽산이 도착했다. 갈색 병에 담긴 이 알약을 이제 하루에 한 알씩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물론 남편과 함께. 언제 될지 모르는 ‘임신’을 위해. 나는 괜히 한 번 약병을 만지작거려 보았다. 이제 내가 진짜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날 저녁 여느 때처럼 퇴근 후 남편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주방 한편에 숨겨둔 엽산 두 알을 꺼내 손에 쥐었다. “오빠 손 펴봐 줄 거 있어.” 한 알을 그의 손바닥 위에 살포시 놓았다. “이게 뭐야?” “엽산. 이제 우리 이거 꼬박꼬박 잘 챙겨 먹자!” 그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 당장 엽산 한 통을 다 삼켜 넘길 기세였다. 내일이라도 바로 아빠가 될 것 같은 엄청난 기대감에 행복해하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이 한 알의 약을 삼키기까지 우리에겐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다. 결혼을 한 후 2년 동안 임신은 우리에게 금기어 같은 거였다. 티브이를 보다 어린아이가 나오거나 임신한 연예인 얘기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렸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지인들의 임신 소식은 달갑지 않았다. 남편에게 아이는 ‘단념’의 존재였고, 나에게 아이는 ‘결심’의 존재였다. 모두 ‘타이밍’의 문제였다.


연애 때부터 그의 마음은 항상 나보다 앞서 있었다. 빨리 결혼하길 원했고 얼른 아이를 갖길 원했다. 나는 아직 결혼이 두려웠고 아이는 더욱더 걱정스러웠다. ‘일’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나에게 출산은 곧 경력단절을 의미했다. 출산휴가는 없었다. 프리랜서에게 자리를 비운다는 건 대체된다는 것이다. 내 일이 끝난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 방송국 국장님이 언제 아이를 가질 거냐 물어오면 ‘출산휴가 주실 건가요?’ 속으로만 답했다. 아직 계획이 없다는 대답만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이었다.


왜 정규직이 아닌 출산을 앞둔 여성들의 경력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어야만 할까. 나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만큼, 일도 하고 싶었고, 커리어도 쌓고 싶었다. 아나운서와 엄마, 작가와 주부를 함께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 그것들의 동시(同時)는 쉽지 않았다. 나와 같은 직업의 선배들이 그랬고, 주변의 거의 모든 여자 프리랜서들이 그래 왔다. 나아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정규직이 아닌 이상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출산 후 출산 전과 똑같은 자리로 복귀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정규직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아나운서는 서울 공중파 공채 입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연장되거나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 아니면 프리랜서다.


이건 단순히 개인의 노력과 부부의 도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바뀌는 영역이 아니었다. 살아가며 일만 할 건 아니지만 잘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는 건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노동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인정과 증명이 필요하다. 일은 그 모든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출산은 그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며 아이를 얻게 되는 건 아빠였고, 아이를 얻고 이전과 아예 다른 삶을 사는 건 엄마인 것 같았다. 항상 직장이 아닌 ‘직업’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던 나였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냥 아무 회사에 들어가서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 임신 전 어디라도 정규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의 개수만큼 임신 계획도 늦어졌다.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며 아이를 얻게 되는 건 아빠였고, 아이를 얻고 이전과 아예 다른 삶을 사는 건 엄마인 것 같았다.




결혼한 지 7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이 마음을 어렵게 그에게 말했다.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에 대한 생각을. 그저 아이를 생각하면 설레기만 했던 그의 마음에 나는 큰 돌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알려 주고 싶었고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나도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설렐 수만 있다면 그걸 하루빨리 원할 것이라고. 배가 부르고, 입덧과 각종 고통에 시달리고, 산통 혹은 수술을 겪어야 하고, 오랫동안 열렬히 그리고 격렬히 쌓아온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과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면 과연 설렐 수만 있을까. 임신은 보채거나 재촉하기보다 신중하고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함을 직시해야 한다.


묵직한 걱정이 그에게 생겼다. 미래의 아이 앞에 우리는 그 순간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매일 밤 얘기를 나누기도 다투기도 울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온도 차 심한 대화와 다툼 속에서 어느 날은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만큼 괴로운 날이었고, 어느 날은 내 일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허무의 날이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느 날은 자기 커리어만 생각하는 내가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기약 없이 늦어지는 아이 계획에 희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마음을 밀고 당기며 우리는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명확한 합의 없는 날들에 결국 ‘아이’는 꺼리고 피해야 할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반복을 이어가며 다툼은 점점 대화가 되었고, 원망은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나아지려고 싸운 거니까. 좋든 싫든 수많은 대화는 이야기의 부피만큼 관계를 회복하게 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함께 기쁜 마음으로 임신 준비를 하자는 마음이 들 때까지 충분히 지금의 신혼을 만끽하기로 했다. 일단은 일단만 생각하기로. 아쉬움은 마음껏 했을 때 사라지고, 어떤 것의 시기는 때로 당장보다 나중이 알맞을 때도 있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 계획 없는 둘만의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우리는 온전히 둘이서 완전한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각자의 삶에 충실해지자 우리의 삶도 충만해지는 걸 느꼈다. 함께라 즐거웠고 둘이라 가뜬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개편을 맞아 매일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방송을 매일 하지 못하게 된 슬픔과 내 의지와 능력과 무관하게 결정된 상황이 아쉽고 억울했지만 생각했다. 때로 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생이 나를 점치는 순간도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 받아들이기가 한결 쉬워졌다. 무언가를 하게 되는 기회가 오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못 하게 되는 순간도 오는 거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런던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혼자 열흘 동안 영국과 에든버러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 혼자 홀연히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의 임신 준비 목록 가장 위에는 ‘혼자 여행’이 있었다. 임신 후 오랫동안 하기 힘든 일은 임신 전 해야 할 중요한 일 맨 꼭대기에 두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남편과 얘길 나눴고, 이제 우리는 엄마와 아빠가 되기에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내가 이제 매일 출근을 하지 않아서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가 원하게 된 시기라는 걸 확인했다. 나는 서른여섯 남편은 마흔, 임신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그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타이밍’이니까. 타이밍은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하여 동작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서로의 생의 주기가 잘 맞아떨어진 시간이자, 상황과 마음의 준비가 된 그때가 임신하기 딱 좋은 때다. 나는 기꺼이 엽산을 주문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난자와 정자가 만나 임신을 한다. 모두 같이 해야 하는 일이고 함께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단순히 엽산을 먹는다고 임신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임신 후 앞으로 둘에게 닥칠 일들과 일어날 변화를 싸움과 대화, 치열한 고민과 논의로 충분히 나눠야 한다. 최대한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그렇게 나눈다 해도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은 무수하기에, 오늘 밤도 신혼부부는 다퉈야 한다. 그 다툼은 대립을 줄여줄 것이고 신혼이 없어진 그냥 부부가 된다 해도 여전히 둘의 관계는 좋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계획과 마음을 털어놓되 상대방의 말도 흡수하고, 진짜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주장하되 그만큼 양보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타이밍은 나이스하게 둘의 삶에 생겨날 것이다. 우리 부부가 그랬다. 물론 그만큼 시간이 흘러 의학적 기준으로 나는 노산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괜찮았다. 1, 2년 앞당겨 임신했다고 내가 이십 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에 결혼한 아는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남편과 시댁이 원해 빨리 임신 준비를 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결혼식에 갔던 건 한 달 전이었다. 물론 그녀도 함께 빨리를 원했다면 상관없지만 아니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남편이 나이가 있고, 시부모님이 원하고, 언젠가 낳을 거라면 빨리 낫는 게 나을 것 같고... 한참을 듣고 보니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아이를 낳을 당사자의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엽산을 어떤 걸 먹었냐 물어왔다. 나는 동생에게 엽산 브랜드를 알려 주는 대신 우리 부부의 스토리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다와 당부의 말은 늘어나고 긴 통화의 끝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알았지? 타이밍은 나이스 하게, 무엇보다 너와 남편이 나이스 할 때. 엽산보다 먼저 주문해야 할 건 대화야!”



동생 부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예비 엄마 아빠들의 싸움과 이야기가 넘치는 치열하고도 다정한 임신 준비를 바란다. 둘의 생각과 속도를 맞춘 생의 가장 좋은 타이밍을 잘 찾게 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