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물려줄 이야기'를 위해
사실 물려받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치명적이다. 매번 같은 경험에 맞닥뜨리면서도 이를 언어화하지 못해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안미선
2020년 5월 30일 엄마가 되었다. 임신 전 넉 달의 산부인과와 석 달의 난임 병원을 다녔다. 생리불순과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배란일을 맞추기 어려워 인공수정을 결정했으나 시술 전 과배란 주사를 맞고 마지막으로 한 관계에 자연임신이 되었다.
임신이 된 직후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으로 복수가 차 임신 6주에 6개월 임신부처럼 배가 나왔고 걷기도 숨쉬기도 힘들었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과 먹덧(계속 먹어야 구역질이 나오지 않는 상태), 온종일 멈추지 않는 두통에 매일 시달렸다. 먹고 토하고 머리를 부여잡는 날들이었다. 임신 막달에는 임신성 소양증(극심한 피부 가려움증)이 와 만삭의 배를 밤마다 손톱으로 피가 날 정도로 벅벅 긁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난한 10개월의 과정을 거쳐 제왕절개로 아이를 만났다.
출산 후 극심한 산후통으로 온몸의 관절에 엄청난 통증이 생겼다. 손가락 마디부터 손목, 허리, 무릎, 발목, 발가락까지 모든 뼈마디가 쑤시고, 시리고, 저리고, 멍하니 아팠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몸 전체가 고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괴로워하며 울기만 했다. 그 통증은 정도는 조금 줄었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젖몸살과 유선염이 심해 가슴에 무언가 스치기만 해도 끔찍하게 아팠다. 내 아이는 신생아 때 ‘등 센서’가 심해 품에 안고 있어야지만 울지 않았는데, 아이를 안으면 가슴이 아파 내가 눈물이 났다. 이래나 저래나 울고 싶은 날들이었다.
수술 후 사흘째부터 젖이 돌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가슴이 젖으로 가득 차 딱딱해지고 뜨겁게 열이 나는데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고통이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임신 전 나에게 젖몸살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슴은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젖으로 가득 차 딱딱해지고 열이 나길 반복했고 가슴 통증도 되풀이되었다. 젖양이 많았지만 아이는 잘 물지 않았다. 누가 수유가 제일 편하고 아름답다 했던가.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선염이 왔다.
유선염은 단순한 염증이 아니었다. 밤마다 누가 내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수반했다. 그때의 나는 내 가슴을 그냥 잘라버리고 싶었다. 부풀어 오른 채로 딱딱하고 뜨겁고 찌르는 통증이 수없이 반복되는 상태에서는 아이도 예쁘지 않았고 나도 살고 싶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심각한 산후 우울증으로 번졌다.
그 기간 동안 새 생명 앞에 내 목숨은 가장 하찮은 것 같았다. 매일 밤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우울과 고통으로 뒤덮여 살아갈 방도를 찾을 여력조차 없었다. 생명의 탄생은 나에게 지독한 산후통과 깊은 우울을 주었고, 그 앞에서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자주 헷갈렸다. 아이는 경이로웠고 나는 처참했다.
시간이 지나 실제로 나를 구원해 준 건 아이의 통잠과 어린이집 등원, 상담과 약물치료, 그리고 글쓰기였다. 쓰며 지난 고통을 복기하는 일은 괴로웠지만,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고, 엄마가 된 나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출산 후 7개월 우울증 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출산 후 14개월 정신과를 찾아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상담하고 약을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밥을 챙겨 먹고, 울고 말하고,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우울증을 고백하고, 이 모든 이야기들을 매일 밤 아이가 잠든 후 기록하며 나에게 생긴 병과 상처는 그제야 조금씩 나아졌다.
아이는 선명하게 축복이었고, 기쁨이었고,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더 뚜렷한 고통과 통증과 눈물이 있었다. 그 불행을 덮고 임신과 출산의 행복만을 말하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오래 그리고 길게 말해져 왔다. 이제 미화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세밀하고 적나라한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임신은 힘들고, 출산은 고통스럽고, 육아는 버겁다고 축약된 한 문장을 무엇이 힘들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왜 버거울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된 내가 늘리고 늘려 세세하게 쓴다. 그 자세하고 정확한 이야기가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부모인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은유 작가는 말했다. 누구나 한계 속에 글을 쓴다고, 그래야 한계에 갇힌 인간의 삶을 위로할 수 있다고. 좋은 엄마 말고 쓰는 엄마로 살아가라고.
앞으로 또 다른 고통과 우울은 내 삶에 어김없이 나타나겠지만, 그럼 또 울고 아파하고 다시 회복하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 삶의 대부분은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잘 안다. 내 새끼 1, 2년 키우고 말 거 아니니까. 이건 전력 질주가 아니라 오래오래 잘 걸어야 하는 일이니까. 잘 기록하고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도움 주고, 누군가에게 ‘물려줄 이야기’를 위해 오늘 밤도 아이가 잠들면 내 경험과 고난을 복기하며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기록한다.
쓰는 엄마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