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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May 17. 2019

의외의 순간들

머릿속이 한 뼘 더 넓어지는 찰나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 예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 순서가 왔다. 누군가의 혼례를 위해 예를 갖춰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한데 모였다. 여자들은 신부 옆자리와 맨 앞줄을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잡고, 남자들은 신랑에게 부럽다며 툭툭 한번씩 건드리고 줄을 선다. 사이사이 얼굴을 내밀고 순간을 남긴다. 여러 번의 촬영이 이어진 후 사진사가 외쳤다.  

   

“부케 받으실 분 나오세요!”      


그런데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나왔다. 순간 모두가 술렁였다.     


“대박! 남자가 부케를 받아?”


신부가 던지는 새하얀 수국 부케를 ‘남자’가 받았다. ‘의외’였다. 나도 그간 수많은 결혼식을 가 봤지만 단 한 번도 남자가 부케 받는 걸 본 적이 없고, 부케 받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남자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부케순이’는 익숙했지만, 순이 대신 ‘돌이’를 붙여볼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부케를 남자가 받지 못할 이유도 전혀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 남자는 신부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부케를 던져도 야구공 받듯이 거뜬히 아주 잘 받아 냈다. 마지막 신랑 신부 사이에 부케를 들고 서서 사진까지 찰칵. 완벽한 ‘부케돌이’였다.  

   

완벽한 '부케순이' 가 아닌 '부케돌이' 였다.


예전에 요가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월급을 받아 약을 사 먹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약 사 먹으려고 돈 벌었나 회의감이 들었다. 더 이상‘젊으니까’ 핑계가 통하지 않는 시기가 왔고,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집 근처 요가학원에 들어가니 예쁘고 늘씬한 여자분이 상담을 해 주었다. 그분을 보며 나도 이제 건강도 챙기고 몸매도 챙겨야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시작 전에 이미 마음으로 목표 달성. 물론 기분 탓이다.


등록을 하고 첫 수업에 갔는데 머리가 희끗한 남자분 한분이 들어오셨다. 속으로 ‘수업 들으러 오셨구나. 상담 때 봤던 선생님은 왜 안 오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안녕하세요! 하며 함께 할 강사라고 인사를 했다. ‘의외’였다. 


수강생으로도 의외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이라니. 상담해 준 여자 분도 이어서 들어왔는데 내 옆에 앉아 함께 수업을 받았다. 요가 지도사 준비 중이라고 했다. 머리가 희끗한 예순이 넘은 남자 요가강사는 단순히 몸매 관리가 아니라 내 몸의 안 좋은 부위를 짚어, 거기에 맞는 운동법과 자세를 알려 주었다. 요가학원이 아니라 요가 재활원 같았다. 훌륭한 수업이었다.     


요가재활원 같았던 요가학원.  훌륭한 수업이었다.


나의 인생영화 포레스트 검프. 톰 행크스의 연기도 인상적이고, 대사들도 다 받아 적고 싶고, 잔잔하게 깔리는 경음악도 듣기 좋은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검프는 선천적으로 지능이 조금 낮은 데다, 등이 굽어 제대로 걷지 못해 다리에 보조기구를 차고 있다. 엄마는 항상 그런 검프에게 결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말하고, 단지 지능이 조금 부족한 것일 뿐이라며 용기를 준다. 검프가 일반 학교에 가는 첫날, 스쿨버스에서 제니라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버스 옆자리에 앉자 제니가 묻는다.      


“다리가 왜 그러니?"


그러자 검프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아 멀쩡하고 근사해!!”


 ‘의외’였다. 어린 검프는 자기의 몸을 그리고 자기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당차고 씩씩한 이 한마디가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 영화 <포레스트검프>



나는 이런 ‘삶의 의외’가 좋다. 놀랍고 멋지다.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머릿속이 한 뼘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의외의 순간, 의외의 인연, 의외의 생각. 삶의 서프라이즈 같다. 예상하지 못한 보통의 행복들.    

 

아나운서가 된 후 아버지의 직업을 숨기고, 거짓말하며 부끄러워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인정의 시간들이 찾아오니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만나는 선배, 친구들과 가끔 부모님의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직업을 말했다. 그러면 선배는 “그래? 생각도 못했네. 의외다.”라고 말했고, 친구는 “정말? 몰랐어. 의외네.”라고 대답했다. 나도 누군가에게‘의외’의 아나운서였다. 나의 이야기로 사람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인정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이 한 뼘 더 넓어지는 것이 보인다.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의외의 일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들의 생각도 훨씬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 더 좋아질 것이고, 더 즐거워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직업을, 나의 배경을 말과 글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나운서 아버지의 직업이 의외네?”가 아니라 “그게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삶의 다양한 의외 앞에 우리 모두 함께 손뼉 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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