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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15. 2018

#참회록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우직하고 위대한 삶에 대한 기록

나는 10년 차 아나운서다. 나의 아버지는 50년을 넘게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했고, 나의 어머니는 40년을 넘게 집에서 남편과 자식을 위해 쌀을 씻었다.     


“저는 아나운서고요. 아빤 막노동을 하세요. 엄마는 평생 전업주부로 사셨고요.”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나는 이 짤막한 한 문장의 자기소개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말을 업으로 하는 내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방송을 하며 수많은 말들을 내뱉었는데 나의 부모 이야기는 하지 못했고, 감추었고, 창피해했다.   

  

아빠의 직업이 부끄러워서, 엄마의 일이 사사로워서 그리고 나의 직업이 화려해서. 누구보다 잘난 아나운서였지만, 누구보다 못난 딸이었다.   

  

나의 직업과 부모의 직업 사이 간격이 너무 커, 나는 많이 그 간극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뉴스를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수많은 전문 직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든 아빠와 나를 위해 밥상을 내어주는 엄마가 있었다.  

    

이상(理想)으로 출근을 하고 현실로 퇴근을 할 때면 나는 그 허망함에 내 방에 틀어 앉아 글을 썼다.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나의 부모가 무슨 엄청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마치 혼자 자란 아이처럼 부모를 부정했을까.     


나의 글은 못난 딸의 참회록이다. 글을 쓰기 전까지 아빠의 직업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엄마의 삶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며 부모를 인정했다.      




평생 막노동을 했던 아빠의 이야기를 처음 글로 썼을 때 온몸이 떨렸다. 글을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잤다. 내가 쓴 글이었는데 읽어도 읽어도 낯설었다. 소설도 아니고, 작문도 아니고,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는데 아무리 읽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글 한편을 썼을 뿐인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일렁임이 있었다.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토한 것 같았다. 나는 글로 몸살을 앓았다.     


평생 쌀을 씻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처음 글로 썼을 때 온몸으로 흐느꼈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글 한편을 썼을 뿐인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글을 쓴 것이 아니라 품은 것 같았다. 나는 글로 엄마를 이해했다.     


나는 여전히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뒤척이고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부와 모의 삶을 조금씩 짐작해 본다. 도대체 몇 편의 글을 써야 그들의 삶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수십 권, 수백 권의 책을 낸다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비와 어미, 아빠와 엄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의 삶을 쓰며,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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