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펜 대신 못과 망치를 들어야 했던 아빠의 삶
아빠는 글자를 쓸 때면 손을 떨었고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었다.
자음 하나 쓰고 쉬고, 모음 하나 쓰고 힘주고, 다시 자음 하나 쓰고 보고, 그러면 글자 하나를 겨우 쓸 수 있었다. 그렇게 쉬고 힘주고 쉬고 보고를 반복해 자기 이름 석 자를 써냈고, 그 이상 길어지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글을 쓰는 게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글자를 잘 써보지 않아서,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의 인생에는 손보다 몸으로 하는 일들이 많아서였다.
국민학교를 중퇴한 아빠는 겨우 한글을 뗐을 것이고 학업이라고 조차 표현할 수 없는 얕은 배움의 시간들을 짧게 보냈을 것이다.
'국민학교도 중퇴할 수 있는 건가?'
'그럼 몇 학년에 아빠는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됐을까?'
차마 그 학년을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이후의 삶은 죄다 몸으로 일구었기에 어쩌다 종이 위에 글씨를 써야 할 때면 익숙지 않음을 티 내듯 손은 진동했고 바짝 긴장했다. 몇 줄도 아닌 몇 글자를 쓰고 나면 종이는 항상 울퉁불퉁해졌다.
아빠는 손에 종이와 펜을 쥔 날보다 못과 망치를 쥔 날이 훨씬 많았다. 무거운 벽돌과 시멘트, 철근과 나무판들은 매일 만졌어도 그 얇디얇은 종이 한 장 만질 날은 많지 않았다. 아빠의 직업은 그랬다.
하지만 그런 아빠에게도 수첩과 펜은 항상 필요했다. 그 수첩에는 하루하루 일한 날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일용직 근로자였던 아빠에게는 일한 날 수를 잘 적어두고 확인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삶은 글자보다 숫자가 많았다. 그 숫자들이 차오를 때면 아빤 항상 나에게 불쑥 물었다.
"8만 원씩 26일이면 얼마냐."
"이백 팔만 원이요."
곱셈을 해드리고 나면 아빠는 기쁨도 슬픔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고개 한 번을 끄덕이고 나가셨다. 아빠의 월급에는 감정이 없다.
수첩을 두고 가신 어느 날 나는 그 낡은 흔적들을 넘겨보았다. 숫자들이 가득 적힌 몇 장을 넘기면 가족과 친척, 지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휴대폰이 있어도 스마트폰을 사드려도 평생 직접 손으로 적은 수첩 속 전화번호부를 보셨다.
가끔 휴대폰을 만지는 아빠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빠는 굳은살이 가득 차오른 뭉툭하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항상 0과 #, 1과 2를 같이 눌렀다. 전화 한 번을 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휴대폰 안에도 수많은 글자들이 있기에 전화 기능 이외에 다른 것들은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엄마 아빠와 문자로 얘기하는 친구들이었다. 매번 아빠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 망설인다. 누르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 한글이 익숙지 않다는 것은 아빠를 아날로그에 머물게 했다. 휴대폰 설정의 글자크기를 제일 크게 해 놓아도, 잘 보이지 않았고 읽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아빠는 아직도 전화를 걸 때 휴대폰 대신 먼저 수첩을 연다.
아빠가 적은 그 수첩의 전화번호부는 내가 아는 이름들이 많았지만 적혀 있는 이름들은 달랐다. 아니 틀렸다. 아빠는 본인 이름 석 자를 쓰는 것 외에 다른 글자를 쓰는 일이 익숙지 않다. 틀린 이름들이 가득 적힌 몇 장을 넘기면 아들과 딸인 나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은 여러 번 다르게 적혀 있고 여러 번 지워져 있다.
그러다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면 이내 정확한 내 이름 석 자와 오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아들과 딸의 이름은 적확하게 새겨져 있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그 두 이름만큼은 바르게 쓰고 싶으셨을 것이다. 자식의 이름만큼은 여러 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해 쓰셨다.
아빠의 하루는 그 수첩에 오늘의 날짜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숫자들은 하루 치의 노동이었고 증명이었다. 50년을 넘게 노동했던 아빠의 수첩은 다 합치면 몇 개나 될까?
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 작은 수첩을 펴고 무딘 손으로 볼펜을 잡고 떨며 써 내려갔던 노동의 숫자들. 1부터 31까지 쓰고 나면 다시 반복됐던 삶의 숫자들. 아빠가 평생 막노동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숫자도 31까지만 배웠으면 됐을까?
"8만 원씩 31일이면 얼마냐."
"이백사십팔만 원이요."
"이만 원 더 준거 맞네. 아빠가 오늘 월급 이백오십만 원 받았다."
한 달을 꼬박 일한 아빠의 보너스는 이만 원이었다. 그날 아빠의 퇴근길 손에는 이만 원어치 삼겹살이 들려 있었다.
우리 아빠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 아빠의 삶은 지금보다 글자가 많아졌을까? 무거운 연장 대신 가벼운 펜을 쥐고 몸 대신 손으로 일을 했을까?
대학을 졸업한 딸이, 펜을 쥐고 아빠의 삶을 써 내려가는 것으로 작은 보상을 대신한다. 나의 펜은 아빠의 연장이고 나의 글은 아빠의 삶이니까. 나는 아빠의 연장으로 글을 쓴다.
오늘도 아빠는 그 낡은 수첩에 오늘의 날짜를 적고 잠이 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