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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27. 2019

“아무런 답장을 못 받으면 그게 답장이 되겠죠.”

쓰길 잘했다. 답이 되었다.

지난 10월 책이 나온 후 두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라디오 출연, 인터뷰, 북토크와 강연까지. 10년 차 아나운서인 나에게 모두 익숙하지만 낯선 일이었다. 라디오 진행자가 아닌 게스트로,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로, 사회자가 아닌 강연자로. 마치 임희정이 아니라 ‘임정희’가 된 것 같았다.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작가’로 서는 나는 매번 새로웠다. 사실 생의 결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위치가 아닌 방향이 달라지는 일이기에, 36년을 살아온 삶이 새삼스러웠다. 이런 새로움이라면 60년을, 70년을 산다 해도 신선할 것이다.   

   

그중 북토크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는 내가 제일 기분 째지는 곳이었다. 내 책을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그분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내 모든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일이었다. 버선발로 나가 마중하고 싶었고, 한 분 한 분 껴안아 드리고 싶었고, 모두를 잘 기억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귀한 시간을 내어 오신 분들께 값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원고를 쓰듯 북토크에서 할 말들을 정리했고, 나의 깨방정과 작가로서의 체통 사이를 넘나들며 찐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는 나뿐만이 아닌 듣는 사람들도 울고 웃길 바랐다.     



내가 제일 기분 째지는 북토크  ⓒ수오서재



두 시간의 찐한 북토크가 끝나고 그 순간들을 복기하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쓰길 잘했다.’ ‘쓰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모든 것은 쓰는 것에서 시작된 거니까. 우리가 소설이나 전문 서적, 자기 계발서 같은 특별한 이야기 아닌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평범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아서이고, 내 이야기 같은 글 속에서 통찰과 공감, 위로를 발견하는 것임을 매 순간 확인했다.


북토크가 끝나고 한 분 한 분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와 부모, 자식, 청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막 심리학도 배우고 싶고, 상담전문가도 되고 싶고, 공부도 마구마구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분들이 나에게 듣고자 하는 건 전문 지식도, 분석도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정답도 답장도 해 드릴 수 없다. 그저 내 이야기와 생각으로 맞장구쳐드릴 뿐이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미소를 보여주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기쁘다. 내 지난 경험치가 이렇게 쓰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 무엇이든 더 많이 겪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글이 되고 위로가 될 테니.     


“우리 딸이 고등학생인데 얼마 전에 자퇴했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딸 이름으로 한마디 적어주세요.”


“저는 아직도 막노동하는 아빠의 직업을 말하지 못했어요. 언제쯤 작가님처럼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다시 제 길을 찾을 수 있겠죠?”


“지금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에요.”


“아나운서 준비생이에요. 작가님 같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아! 나에게 건네지는 낯선 사람들의 익숙한 고민들.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면 한없이 둥글려 있는 물음표를 내가 쫙 다 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딸, 회사원, 여자, 청춘으로 물어오는 질문 앞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경험치를 벌려놓고 싶다. 그 중 딱 알맞은 겪음과 깨달음을 골라 해답을 드리고 싶고, 시간이 지나고 다 해결되어 다 같이 술 한잔을 하고 싶다. 내가 고뇌를 징하게 해봐서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면 마음과 의욕이 앞선다.      

    

사실 우리는 모두 꼭 해결을 위해 묻는 것만은 아니다. 정답이 없는 것이 답이 될 수 있고, 묻는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러므로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거니까.  


제목부터 매력적인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의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말했다.





아무런 답장을 못 받으면
그게 답장이 되겠죠.     





생의 답장은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답장이 되겠지.     



생의 답장은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거니까.



문득 아빠를 모시고 함께 했었던 한국일보 인터뷰 때가 생각난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빠와 함께 집에 오는 길. 아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우리 딸이 책을 내 가지고! 내가 오늘 한국일보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고 왔어! 딸 덕분에 신문에도 나와보네!”


인터뷰가 ‘기자회견’으로 둔갑된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인터뷰하기로 어렵게 마음먹은 일도, 내가 글을 쓴 일도 모두 잘한 일 같았다. 그것이 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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