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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13. 2019

‘송년회’를 ‘신년회’로 넘기지 않도록

모두의 연말 모임을 위한 꿀팁

12월이 된 후로 송년회 날짜를 잡자는 친구와 지인들의 연락이 부쩍 잦아졌다. 그렇다. 연말이다. 1년 동안 바빴고, 소홀했고, 무심했던 마음들을 12월 한 달에 만회하려다 보니 요즘 누군가와 연락을 할 때 가장 많이 튀어나오는 단어는 ‘송년회’다. 뭐든 몰아서, 마감 즈음에, 끄트머리에, 막차를 타는 습관은 누구에게나 있다.    



 

친구 A에게서 연락이 온다. “우리도 송년회 해야지!” “응! 얼굴 봐야지 B, C, D 연락해 보자!” 곧이어 단체 톡방이 만들어진다. “얘들아 송년회 날짜 잡자! 다들 언제가 좋아?” 몇 개의 주말 날짜들이 오가고, 둘이 가능하면 둘이 안되고, 셋이 가능하면 한 명이 안 되는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한 서로의 스케줄이 난무한다. 누군가 카톡의 투표 기능을 활용해 날짜를 올려보지만 한 날짜로 통일되기엔 남북통일만큼이나 어렵다. 이럴 경우 둘 중 하나다. 결국 한, 두 명이 빠진 모임이 되느냐, 다 같이 봐야 의미가 있다며 신년회로 미뤄지느냐. 사실 알고 있다. 새해가 된다고 해서 모두 다 모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핑계는 도처에 널려있고, 변수는 꼭 당일에 생기기 마련이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네 삶이 너무 어지럽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겨우 송년회 날짜가 잡힌다. 이제 더 큰 관문이 남아있다. 장소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강서와 강동, 강남과 강북. 어쩜 우린 다들 그렇게 흩어져 사는지 쉽지가 않다. 위치조차 합의점을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어찌 저찌해서 강남 쪽으로 대충 위치를 잡지만 최종 관문인 장소 예약이 남았다. 이게 가장 골칫덩어리다. 평소 인스타나 인터넷으로 보면 맛집도 많고 분위기 좋은 곳도 널려 있던데 왜 꼭 ‘모임 장소’는 마땅치가 않은지. 이럴 때를 대비해 인스타는 쓸어 올리며 좋아 보이는 곳이 있을 때 ‘눈팅’만 말고 꼭 저장을 해 두어야 한다. 하다못해 캡처라도.      


누군가 ‘어디’가 좋을까?라고 물었지만, 그 누구도 ‘어디’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답들이 쏟아진다. “다 좋아!” “난 상관없어!” 나는 묻고 싶다. 얘들아. ‘다 좋아 식당’과 ‘상관없어 카페’가 강남 어디에 있니? 알려줘. 예약은 내가 할게.     



여보세요? 거기 '다 좋아 식당'이죠? 4명 예약 가능한가요?



모임 약속을 정할 때마다 나는 항상 위치와 장소를 내가 알아보는 편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지인들은 항상 ‘다 좋다’고 했고, 나는 ‘다 좋아할’ 장소를 찾아 인터넷 검색과 인스타 검색을 미친 듯이 해야 했다. 한식, 중식, 일식 종류별로 서 너 개의 식당을 찾고, 주차는 되는지, 룸은 있는지 등등의 고민을 거쳐 카톡 창에 몇 개의 링크를 보낸다. 그럼 답이 온다. “오! 난 다 좋아!” 그래. 얘들아. ‘다 좋아’ 식당을 찾지 못한 내가 '다 싫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 누군가는 리더 역할이, 누군가는 서포터 역할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한다. 리더도 때로는 서포터가, 서포터도 때로는 리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환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 ‘선배와 후배’가 ‘부모와 자식’이 ‘남과 여’가 그럴 것이다.     


내 주변엔 나와 같은 리더기질의 친구들이 몇 있다. 얼마 전 그 친구들과 약속 모임을 잡던 카톡방에서 난 송년회의 모든 것이 몇 분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기적을 보았다.


송년회 날짜 잡읍시다! / 토요일 점심으로 14, 21, 28 골라. / 21 / 21/ 21/ 28ㅜㅜ 이지만 내가 맞출게! / 장소는 강남이 편하지? / 잠시 후 몇 개의 링크가 1인 2개꼴로 올라온다. 머지않아 장소가 결정된다.  

내가 예약할게. / 예약 완료! 21일 12시 그날 봐! / 오키!


이 카톡창에서는 리더도 서포터도 없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이 송년회를 하겠다는 마음이 가득했을 뿐이다. 망설이지 않았고, 서로가 보낸 링크의 수고로움을 알았고, 내가 하겠다는 솔선수범이 우리의 송년회를 신년회로 미루지 않게 만들었다.     


이 카톡 창 친구 한 명의 여행 일화가 갑자기 생각난다. 몇 년 전 혼자 여행을 가려고 모든 준비를 끝마쳤는데 다른 친구가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며 숟가락을 얹었다고 한다. 자기는 그냥 모든 일정을 조용히 다 따라다니겠다고. 하지만 여행지에서 친구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질문을 받았다. “다음은 어디가?” “다음은 뭐 먹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둘은 침묵한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씁쓸한 이야기. 숟가락은 살포시 그리고 조용히 얹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그 친구의 친구는 다신 그 친구와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숟가락을 얹을 땐, 살포시 그리고 조용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임을 잡을 때 장소를 알아보는 사람은 다른 모임 약속에서도 잡을 확률이 높다. 다 좋은 사람은 다른 모임에서도 다 좋을 확률이 역시나 높다. 하지만 묻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다 좋아’는 정말 다 좋은 게 아니라 ‘무책임’ 한 거라고. ‘다 좋아’는 약속이 깨져도 ‘다 좋다’고 하니까.      


약속은 ‘타이밍’이 아니라 ‘의지’로 지켜지는 것이라는 걸. ‘사정과 변수’가 아니라 역시 ‘의지’로 깨지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자. 1년 동안 바빴고, 소홀했고, 무심했던 마음을 모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제 카톡창으로 송년회 모임을 잡을 때 ‘다 좋아!’를 쓰기 전에 검색창에 ‘강남 모임 장소 추천’이라도 쳐보자. 리더 기질의 한 친구가 기뻐하며 더 많은 링크를 보낼 것이다. 적극적으로 가능한 서로의 범위를 말하고, 어지러운 연말 일정들을 조절해 어떻게 서든 보겠다는 생각이 더해지면, 누군가 늦게 오더라도 결국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나님! 올해도 수고했다. 짠! 짠!


그렇게 송년회에서 다 같이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수다를 떨다보면,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를 조금이나마 덜 아쉬워할 수 있을 것이다.


연말은 그런 거니까. 하는 것 없이 시간은 빨리 가고, 정처 없이 마음은 떠 있고, 조금은 시끄러운 그런 시간들이니까. 어쩌겠나. 그럴 때 그리운 사람들이라도 만나 술 한잔을 기울여야지. 오늘의 송년회를 ‘내년’의 신년회로 미루지 말자! 우리는 새해에도 바쁠 예정이고, 모든 일의 가장 좋은 타이밍은 ‘지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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