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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Nov 29. 2019

너무 다른 남녀가 서로를 맞춰가는 방법

발이 여섯 개인 남자, 몸이 일곱 개인 여자.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연애를 ‘양보다 질’로 했다. 여러 명의 남자가 아닌 몇몇의 남자를 길게 만났다. 짧은 연애는 체질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 사람을 마음에 들이기까지 나는 아주 신중하고 뜸을 들이는 성격이었기에, 한 번 ‘내 사람이다’ 생각이 들면 의리로 사랑을 끌고 가는 성격이었다. 몇 번의 긴 연애 끝에 내린 결론은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것보다, 한 사람을 오래 보는 것이 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해의 폭은 변화를 통해 넓어지며, 그 변화무쌍한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성숙할 수 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가, 인간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게 되고, ‘님’이 ‘남’이 되는 경로를 거쳐 또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흔히들 비슷한 성격의 남녀가 만나야 잘 산다고 한다. 같은 관심사, 비슷한 취향, 고만고만한 성격의 둘이 만나면 반대의 경우보다 싸울 일이 적다고. 그런데 나는 완전 다른 성향의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간단하게 말해 나는 성격이 ‘머슴아’ 같고, 남편은 성격이 ‘기지배’ 같다. 말을 업으로 하는 나는 일이 끝나면 말하기가 싫다. 반면 이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그는 남자사람친구와 만나서도 커피 한잔에 3시간을 기본으로 얘기를 나눈다.


나는 항상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너’도 중요하지만 ‘나’도 중요하다. 일 년에 한 번 국내든 해외든 혼자 꼭 여행을 가야 하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충전을 한다. 반대로 이 남자는 ‘우리’가 중요하다. 항상 같이 있어야 하고, 같이 해야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오빠는 연애 때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외로운 연애는 처음이야...” 이외에도 다른 점은 오백 가지가 있다. 생략하기로 한다. 밤새 글을 써야 하므로. 그런 우리가 만나 결혼을 했다. 이제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는 너무나 다른 남녀가 만나 결혼해 한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스토리다.     



드루와~ 드루와~



상황 1. 여자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을 걸기가 귀찮아 책상 의자에 쌓아놓는다. 그 ‘옷탑’은 차곡차곡 쌓아지고 결국 의자가 뒤집어지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남자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양말을 벗어 뒤집어 말려진 상태로 바닥에 던져놓는다. 세탁기까지 가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방 곳곳에 똘똘 말린 양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어느 날 여자는 양말을 쳐다보며 말한다. “우리 오빠는 발이 여섯 개인가?” 남자는 의자를 바라보며 받아친다. “우리 마누라는 몸이 일곱 개 인가?” 여자는 응답한다. “맞네??!” 그렇게 둘은 빙구처럼 웃으며 동시에 각자의 옷과 양말을 치운다. 옷은 켜켜이 쌓은 후 옷장 속으로, 양말은 뒤집어진 후 다시 원상태로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는 나날들이 반복된다.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은 석가탑인가? 다보탑인가?
이것은 사람인가? 지네인가?



상황 2. 여자는 화장실에 간다. 세면대 위 선반에 갖가지 용품들이 있다. 클렌징, 아이리무버, 에센스, 스프레이, 쉐이빙폼, 면도기 등등 남녀가 씻기 위해 혹은 멋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화장실엔 언제나 한가득이다. 남자는 이런 물건들을 쓰고 뚜껑을 단 한 번도 닫지 않는다. 각각의 용품들 옆에는 그 뚜껑들도 함께 있다. 처음 여자는 그 뚜껑을 하나하나 닫아놓았다. 하지만 어김없이 옆에 놓여있는 날들이 계속됐다. 남자에게 물었다. “오빠는 물건 쓰고 뚜껑을 잘 안 닫지?” “응. 버릇이 안돼서...” 다음날. 여자는 화장실 용품의 모든 뚜껑을 다 버린다. 어차피 뚜껑을 열어둔다고 마르거나 변하는 물건들도 아니다. 뚜껑 없이 클렌징을 하고 에센스를 바르고 스프레이를 뿌리니, 어쩐지 뚜껑을 열었다 닫는 1.37초 정도의 시간이 모여 외출 준비를 하는 시간이 10초 정도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아주 흡족해했다.   

  

뚜껑? 그까이꺼 뭐~




상황 3. 남자는 퇴근을 한다.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다. 나와서 여자에게 말한다.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 치워줘서 고마워!” 여자는 속으로 흠칫 놀란다. ‘기지배같이 디테일한 건 알았지만 눈썰미가 이 정도라니!’ 속으로 생각하고 겉으로 말한다. “역시 우리 신랑! 고마워. 내가 오늘 아침에 화장실 대청소 했거등!!” 보이지 않는 수고를 알아보려 촉을 세우는 노력 덕분에 품을 들인 사람이 더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고 나란히 침대에 눕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맞아!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몇십 년을 다른 환경과, 생활패턴, 생각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남녀가, 한집에 매일 같이 살을 부대끼고 같은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싸우는 건 쉽고 상처 주는 건 더 쉽다. 한순간에 맞춰 가기엔 서로의 오래된 습관이 있고, 패턴이 있다. 그것은 반복해 온 만큼 반복하지 않아야 겨우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의 다름을 무조건 바꾸려 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는 노력이 먼저여야 하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 남자가 조금만 바뀌면 우린 너무 행복할 수 있는데’ 생각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이 여자가 이런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면 우린 너무 행복할 수 있는데’ 생각한다. 쉽게 바뀌길 바라는 마음과 원래 이런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면, 완전 다른 둘이 만난다 해도 부딪히기보단 맞춰가게 된다.      


처음 신혼집을 얻었을 때, 우리 집은 5층이었다. 내심 고층에 탁 트인 뷰의 집이 부럽기도 했던 나는 어느 날 여름 장맛비가 내리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비를 좋아하는 남편이 거실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집이 높지 않아서 이렇게 집 앞에 나무들하고 눈높이가 맞으니까 좋다!” 나는 남편의 그런 시선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며 우리는 상처주려 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과, 의도하지 않아도 비교하는 말들로 싸우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서로 다짐했다.



크고 높고 많은 것과 비교해 주눅 들지 말고,
작고 낮고 적은 것과 비교해 감사해하기!




그렇다면 우리의 부부생활이 좀 더 현명하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리고 지적을 하거나 화를 내고 싶을 땐 유머와 함께, 수긍해야 할 일은 괜한 자존심으로 버티지 말고 바로 인정하기로 약속했다.     


언젠가 내가 오빠에게 “역시 안 맞아 안 맞아!”라고 장난스레 말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잘 맞는 사람이 살다가 안 맞는 것보다, 안 맞는 사람이 살면서 맞춰가는 게 낫지. 안 그래?”


아. 역시 고수다. 어디 가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을 남자다. 에잇! 기분이다! 오늘 집 대청소는 내가 한다! 하지만 호기롭게 청소기를 돌렸지만 거실 곳곳에 또 뒤집어 똘똘 말려있는 양말들을 보니 속이 조금 뒤집어 지려 한다. 쉼호흡을 하고 이내 유머를 섞어본다.


“우리 오빤 그사이 발이 여덟 개로 늘었네?”


하지만 센스 있는 남편의 말에 기분이 좋으니 오늘 신랑의 양말은 내가 세탁기에 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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