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뻔한 당부의 말만 반복할 뿐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늘어난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챙겨본다. 혹시라도 내가 사는 지역에 확진자가 나오지는 않았는지 노심초사하고 확진자들의 이동 경로 기사들을 보며 불안해한다.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제를 챙겨 나간다. 길거리에 하얗고 까만 마스크를 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재난 영화를 현실에서 상영하고 있는 듯하다. 몇 달 사이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의 풍경은 이렇게나 달라져 버렸다.
강연과 수업, 행사 진행을 주로 해왔던 나 또한 지난달부터 일이 뚝 끊겼다. 예정됐던 일들은 모두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나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 일상의 영역이 토막 나고 멈추고 있다. 명확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이 우리 모두를 점점 더 예민하고 지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재택근무 중이야.”
회사에 다니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말한다. 회사가 있는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거나, 나오지 않았다 해도 예방 차원에서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지인은 비행편이 현저히 줄어 휴직했다고 한다. 하지 않아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밖에 비행 스케줄이 없다고 들었다. 종류와 범위를 넘어 일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날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재택근무를 할 수도, 일을 쉴 수도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파트 외곽 청소원으로 일하는 아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분이 그렇듯 ‘어쩌겠어’라는 한숨뿐 다른 방법이 없다. 건설 현장 노동자로 근무했을 때는 한여름 폭염과 폭우, 한겨울 강추위가 아빠에겐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금 아빠에겐 그 영역이 하나 더 늘었다.
며칠 전 아빠가 일하는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다행히 옆 동네이긴 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 광명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대요. 일할 때 마스크 절 때 빼지 말고 손도 수시로 잘 씻으세요!”
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누구나 건넬 수 있는 당부의 말뿐이었다.
“아빠 근데 마스크는 집에 있어요?”
“약국가도 없고, 마트에도 없고, 파는 데가 없어. 그냥 면 마스크 있는 거 계속 끼고 있다.”
물론 면 마스크도 예방 효과가 있지만, 온종일 밖에서 청소해야 하는 아빠에게는 차단율 제일 높은 일회용 마스크를 잔뜩 사드리고 싶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빠와 같이 현장에서 일하시는 고령의 노동자에게는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우선 공급하면 안 되나 와 같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빠! 면 마스크도 괜찮은데, 대신 매일매일 일 끝나면 깨끗하게 잘 빨아서 쓰세요!”
역시나 당연한 당부의 말로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말 나는 우리 집에 있는 세 개 남은 일회용 마스크 중 두 개와 손 소독제, 손 소독 티슈를 들고 본가에 다녀왔다. 부모님을 뵙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그냥 세 개 모두 다 드릴 걸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어느 지역도 안심할 수 없고, 어떤 상황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 ‘먼저’라는 우선순위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아빠와 같이 현장에서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자식인 나는 걱정이 많다.
오늘도 그저 나는 ‘집’ 안에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밖’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아빠에게 전화해 뻔한 당부의 말을 반복할 뿐이다. 얼른 아빠가 마스크를 끼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길거리를 청소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진정돼 우리 모두의 일상이 회복되길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