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도 전해지는 마음
아빠는 참 무뚝뚝하다. 말수가 적고, 어떤 감정이든 내색이나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도 ‘왔냐’라는 짧은 인사가 끝이고, 가끔 일이 끝난 후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서도 ‘아빠다’라는 한마디가 끝이다. 이어지는 대화의 몫은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아빠 얼굴 좋아졌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감탄이나 질문을 하면 또 ‘응’하고는 끝이다. 사위에게도 마찬가지다. ‘왔는가’ 끝이다. 결혼 초 남편은 아무 말이 없는 아빠 앞에서 자주 혼자 노심초사하곤 했다. 하지만 나처럼 곧 익숙해졌고, 아빠가 말이 없는 건 무언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편해서라는 걸 남편도 알게 되었다. 이젠 가족 모두가 침묵해도 불편하지 않다. 그것은 굳이 누구도 애쓰거나 깰 필요가 없는 평온한 정적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당연히 아빠는 평생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아내에게 혹은 자식에게 살가운 말이나 사랑의 표현을 해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길게 본인의 마음이나 생각을 얘기할 때는 술을 마셨을 때다. 술기운을 빌어 못했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안 했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말한다. 술도 못 이기는 양반이 술 한잔 들어가야 말을 한다고. 자주 그리고 많이 드시는 편이 아니니 나는 가끔 아빠의 술주정이 반갑고 좋을 때가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의 어느 생일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생일상도 항상 ‘셀프’로 차렸다. 사실 차렸다고 표현할 수도 없는 본인 손으로 끓인 미역국이 전부인 밥상이었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잊거나 그냥 넘어가곤 하셨다. 나에게 생일은 일 년에 딱 하루 나를 위한 특별한 날인데, 엄마에게 생일은 어제와 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특별히 축하해 주는 이 없고, 하는 것 없고, 받는 것 없는 똑같이 평범한 하루. 챙겨 줄 남편과 자식은 무디거나 바빴고, 어리고 철이 없었기에 엄마에게 생일은 의미 없이 돌아오는 월요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의 그 생일날을 기억하는 건 아빠가 그날 ‘술에 취해’ 집에 오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일이 끝난 후 술에 취한 채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다. 그러더니 앉아있는 엄마 품에 아무 말도 없이 ‘툭’하고 던졌다.
“이게 뭐야!”
깜짝 놀란 엄마가 물었고, 몇 번을 되물어도 아빠는 술에 취했음에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한 내가 달려가 봉지를 열어보았고, 그 안에는 ‘BYC 삼색 팬티’가 들어있었다.
“엄마! 이거 팬티야!”
“뭐야. 내 생일이라고 사 온 거야?”
엄마는 아빠에게 꾸지람을 했지만 입가는 분명 웃고 있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엄마의 힙 사이즈를 과소평가했던 아빠의 선택이 엄마에겐 작고 그 당시의 나에겐 커서, 아빠의 유일했던 생일선물은 몇 년이 지난 후에 엄마가 아닌, 엉덩이가 좀 더 커진 나의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엄마는 입지 못했던 노란색, 연두색, 흰색, 알록달록 삼색 BYC 면 팬티. 그 선물이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아빠는 항상 그랬다. 시대에 뒤떨어졌고, 무뚝뚝했으며 손에는 쇼핑백보다 검정 비닐봉지를 자주 들었다. 항상 자신의 유일한 두 여자인 아내와 딸내미를 향한 사랑의 표현을 검정 비닐봉지 속에 까맣게 감추는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건넸던 비닐봉지 속 팬티도, 종종 나에게 건넸던 까만 봉지 속 과자도, 나는 그것들이 말 대신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 대신 감추는 것으로 전했던 아빠의 마음이라는 걸 안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안다.
까만 비닐봉지 속에 가려진 아빠의 마음이었지만, 엄마와 나는 그 속에 든 아빠의 사랑을 눈치챘고 알아차렸기에, 엄마는 그만큼 늙었고 나는 이만큼 자라났다.
아빠의 사랑은 까만색, 눈에 잘 띄지 않고 항상 불쑥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온다.
예전에 썼던 <아빠의 사랑은 까만색>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