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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Sep 08. 2021

알릴레오 북스를 시작하며

퇴사, 그리고 새로운 시작

올해 2월, 2017년부터 몸 담았던 정의당과 작별하고 5개월간 아무 생각 없이 정말 푹 쉬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막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한 번의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접속했다.





정의당.


햇수로 4년 동안 당직자로 일하며 답답했던 경험도, 화가 났던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내겐 그보단 의미 있는 경험이 더 많았고, 소중했던 기억도 참 많았던 곳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부서는 아쉽게도 대변인실과 홍보팀 딱 두 곳뿐이다. 그 두 부서에서 일하며 마음에 크게 남았던 일을 딱 두 개만 꼽자면 전자는 노회찬 원내대표님을 잃은 일, 후자는 2019년 패스트트랙 당시 국회 바닥에서 밤을 보낸 일이다.


노회찬 원내대표님을 떠나보내기 얼마 전, 그분께서 국회 정론관(지금은 소통관으로 바뀌었음)에서 특활비 반납 기자회견을 하셨던 2018년 6월 7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원내대표실에서 해당 발언을 챙겨달라 요청받아 그걸 챙기러 직접 정론관으로 향했었다. 사실 대표님은 새내기인 나에겐 항상 커다란 산 같은 분이었다. 사실 그분의 존재는 내가 '정의당'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이기도해서 더 그랬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와 백브리핑을 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조금의 당혹스러움과 묘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대표님을 마주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던지라, 늘 멀리서 볼 땐 몰랐었다. 늘 착용하시는 그 구두와 여름 재킷이 너무나도 낡았다는 걸. 그래도 국회의원이고, 한 당의 원내대표이신 분인데... 국회에서 늘 마주치는 다른 많은 의원들과는 너무 다른 차림새라 더욱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그분을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낸 후에 한참 동안 마음이 찢어질 듯이 많이 아팠다. 사실 아직도 종종 그 양복과 구두를 떠올리면 울컥하곤 한다. 이제 와 말하자면 글이나 말로 풀어내면 더욱 아플 것 같아 여태껏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다. 더 이상 당직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의당이 대한민국 정치에 발전적인 역할을 하기를 응원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도 사실은 그분이 남기신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어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패스트트랙 상정 당시 동료들과 함께 했던 일이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밤 12시가 넘도록 국회의 찬 바닥에서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려는 당시 자유한국당과 대치했었다. 우렁차게 외치는 그들의 구호를 구호로 뺏는 소소한 재미를 맛보기도 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_zIJpiVdPE) 당시의 영상인데, (왜 민주당 당직자들이라고 자막이 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경험을 어디에서 해보겠는가.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이니 기억에 생생한 것도 있다만, 나중에 역사로 기록될 현장에 직접 함께 했다는 사실이 즐겁기도 했고, 민생법안들을 상정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기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한 생생한 일들을 포함해, 약간은 흐릿한 모든 것들도 지금의 나를 이룩하고 있는 많은 내적 자산이 되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얘기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소회를 다 풀어낼 순 없으리라. 하지만 세세한 이야기들은 내 가슴속에만 남긴 채, 기회가 되면 풀어보는 것으로 하겠다.






2021년 7월, 서른한 살의 나는 노무현재단에서 '알릴레오 북스'와 함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과정도 물론 그 자체로 참 좋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책을 매개로 다수의 누군가와 교류하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는 일은 더욱 흥미롭다. 배울 점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유의미한 하나의 콘텐츠로 묶어내는 일을 해보니 제법 재밌기도 하다. 더 많은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도 생긴다. 알릴레오 북스가 그려갈 콘텐츠들이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콘텐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재단은 현재 한창 시민센터 건립 이슈로 분주하다. 이 중 미디어콘텐츠에 관한 사업계획도 매우 많이 구상되어 있다.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시민센터이기에 센터가 건립되고 나면 어떤 콘텐츠 사업들을 시작하게 될지, 새롭게 내가 하게 될 일들은 무엇일지 많은 생각들을 하기도 한다.


몇 년 후 이곳에서의 일들을 복기할 때, 어떤 일이 생생하게 떠오를지 궁금하다. 거기에서 나는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정확히 다 알 순 없겠지. 하지만 무엇이 됐든, 바라는 건 하나 뿐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수많은 타인을 위해 기여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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