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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8. 2021

[여행기] 열정을 두 주먹에 담아
- 조치원권투체육관

[취재/글/사진] [조치원 이야기]


열정을 두 주먹에 담아 - 조치원권투체육관




조치원으로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나는 기사 아저씨의 우렁찬 외침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허겁지겁 일어나 버스에서 내린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조치원역 종점입니다!


생애 처음으로 와본 조치원은 시골과 도시 사이 그 어딘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정신없이 늘어선 건물과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낯설지만 익숙하다. 조치원의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하릴없이 거리를 걷던 나는 ‘권투체육관’이라 적힌 이정표 하나에 시선을 빼앗겼다.


‘반칙왕 촬영장’이라 적힌 이정표를 보니 체육관은 겉보기에 유명한 관광명소인 듯했다. 이정표에 적힌 화살표 표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자 낡은 퀀셋 막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막사 건물 바깥에 덧대고 덧댄 허름한 함석지붕은 체육관이 거쳐 온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마침 체육관의 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려던 나는 체육관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얼핏 보기에 관광지를 관리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체육관을 운영하는 강용덕 관장이었다.



40년 넘도록 운영되고 있는 이 권투체육관은 촬영장이라 적힌 이정표와 낡은 외관으로 인해 세트장으로 종종 오해를 받는다. 퀀셋 막사는 6·25전쟁 때 미군 보급기지로 사용되었다가 75년부터는 권투체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퀀셋 막사를 그대로 활용한 권투체육관 중 남아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해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운동을 위해 체육관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80명 정도 되고요, 전문적으로 권투선수를 꿈꾸는 사람은 3명 정도 됩니다.


이른 오전 시간인지라 안에서 연습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체육관 곳곳에 놓인 수많은 글러브와 줄넘기를 보니 엄청난 학생 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강용덕 관장은 전문적인 선수 육성 외에도 취미 생활이나 건강유지, 체중감량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에게 권투를 가르치며 관원을 모집한다. 옛날보다 권투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강용덕 관장은 권투 부흥을 위해 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권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기에 나는 이곳에서 촬영한 ‘반칙왕’은 물론이고 그 유명한 ‘록키’조차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체육관을 다녀보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사실 그래서 매체에 이따금 등장하는 권투선수들의 열정에 공감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권투체육관에 들어와 선수들의 피땀 어린 연습공간을 둘러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닳아서 해진 권투 기어와 링 위에 무심히 걸쳐놓은 땀에 젖은 연습복을 보고 있으니 그저 남 일 같던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이 실체가 되어 다가왔다. 체육관 안에 유독 많이 걸려있는 각종 표어와 거울에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선수들의 간절함이 묻어있다.



온 국민이 권투에 관심을 가지던 7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조치원 권투체육관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체육관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권투의 전성기를 기다리며 조치원 권투체육관은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피워낸다. 






http://naver.me/F10Q5p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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