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ORK BOX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먼지 Jan 18. 2021

[여행기] 따스함이 흐르는 빨간 벽돌집 - 그레이맨션

[취재/글/사진] [청주 이야기]


따스함이 흐르는 빨간 벽돌집 - 그레이맨션





사락사락 조용히 눈이 흩날리던 날, 빨간 벽돌집 마당에도 먼지처럼 작은 눈송이들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집처럼 보이는 이곳은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위화감 없이 주변 가정집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지 ‘그레이맨션’이라 적힌 간판을 여러 번 확인해야만 했고, 친한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레이맨션에 들어선 나를 처음으로 반겨준 건 하늘거리는 망사 천이다. 천장에 매달아 밑으로 사르륵 쏟아지도록 연출한 흰 망사 천은 여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사방에 걸린 천 사이로 은은하게 빛을 내는 조명은 얼었던 몸을 사르르 녹여줄 정도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관을 지나 실내 공간으로 들어서니 원래 거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알록달록한 쿠션과 풀잎으로 단장한 거실은 어떻게 보면 잘 꾸며놓은 응접실 같기도 하다. 이제 거실에 들어섰을 뿐인데 감탄이 절로 나는 예쁜 공간을 보니 주인장의 남다른 감각이 부러워질 정도다. 가끔 인테리어를 바꾸기도 한다니 다음에 방문하면 어떤 모습으로 꾸며질지 궁금해진다.



이미 인근에선 소문난 공간인 듯, 방마다 손님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중 꽃무늬 벽지로 꾸며진 방에서는 겨울에 잘 어울리는 ‘로맨틱 홀리데이’가 벽면을 스크린 삼아 재생되고 있다. 꽃무늬를 배경 삼아 즐기는 로맨틱 영화라니, 익숙하진 않지만 제법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커피를 주문하러 다가간 계산대 뒤로는 작은 주방이 보인다. 주문을 받으면 홀과 가까운 곳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커피 이외 음료는 주방과 이어진 안쪽 공간에서 만들어낸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돋보인다.



손으로 적은 깔끔한 메뉴판은 읽기 쉽도록 굵은 글씨로 적혀있는데, 그중 독특한 이름이 인상적이었던 ‘더티모카’를 주문해본다. 이름부터 특이한 ‘더티모카’는 그 비주얼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유 거품과 코코아 가루가 잔을 타고 흘러내리며 말 그대로 ‘더티한’ 모양새를 내보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만들어내면 어수선해 보이기 딱 좋은 음료, 그러나 그 나름의 꾸밈새가 예뻐 보이는 게 참 신기하다. 카페 주인의 직업이 예술가라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어둑하면서도 아늑한 카페 안에서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고 있자니 슬금슬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나 같은 손님이 많은지 카페 안에는 곳곳에 담요가 놓여 있다. 몸을 일으켜 담요를 가져오려는데 서랍 위에 놓인 스피커와 한 장의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싱 스트리트’의 OST 앨범. 실제 카페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다른 노래였지만, 카페 곳곳에 영화 관련 소품이 많이 놓여있어 주인의 영화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외에도 구형 TV나 카메라 등 공간을 수놓은 예스러운 소품에서 빈티지한 감성이 느껴진다. 



안녕히 가세요.


아늑한 방을 뒤로하고 그레이맨션을 나서는 길, 주인장은 현관까지 나와 나가는 손님을 배웅해주었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그 말에서 훈훈함이 느껴진다. 쌀쌀한 날씨에 굳어있던 마음이 생각지 못한 친절 덕분에 말랑말랑해졌고,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그 날은 마음을 흔들어놓는 카페 그레이맨션의 매력에 거하게 취한 날이었다.






http://naver.me/xDbJWplT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기] 집으로 떠나는 여정 - 카페 로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