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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1. 2021

[취재기사] 날아라, 연희동

날아라연희동

연희동 마을 예술축제 – 2017 연희걷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동네를 놀이터 삼아 놀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유난히 별난 딸이었던 나는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길 좋아했다. 학교로 가는 빠른 길을 찾아 남의 집 뒷문을 뚫고 등교하기도 하고, 놀이터 벽을 타고 오르다 다리 살갗이 전부 벗겨지는가 하면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고 오르다 미끄러져 턱을 꿰매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심지어 우리 집 옥상과 남의 집 옥상을 뛰어넘는 위험천만한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어렸을 적 나는 그야말로 동네 월드의 자유 이용권을 가진 무법자였다.     


골목 사이사이 주택이 자리한 연희동에서는 잊고 살던 어린 날의 추억을 만날 수 있다. 전시를 보기 위해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고 있자면, 놀 친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는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다. 그러나 요즘은 옛날처럼 동네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온 동네를 제집처럼 누비던 아이들이 이제는 동네를 그냥 지나쳐가기 때문이다. 집, 학원, PC방 등을 오가며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은 점점 동네를 잊어가고 있다. ‘연희, 걷다’는 동네를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동네를 돌려주려 한다.     


연희동 한 편에 자리 잡은 놀이터에서는 강덕현 작가의 페인팅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었다. 퍼포먼스는 ‘연희, 걷다’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야외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이처럼 동네에서 예술 공연이 펼쳐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번화가에서나 하는 버스킹을 주택가 놀이터 안에서 볼 수 있다니. 어릴 적, 동네에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이벤트는 소독차가 내뿜는 연기를 쫓아 달리거나 드문드문 나타나는 병아리 장수 아저씨를 찾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듯 단순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동네는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이런 색다른 동네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의 이런 의문은 ‘연희 반상회’를 통해 쉽게 해결되었다. 반상회는 연희동 주민들이 모여 동네를 이끌어가기 위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그들은 동네가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연희동 외에도 동네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곳들이 많다. 그러나 다들 표면적인 부분만 생각해 단순히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축제만을 떠올리곤 한다. 동네와 상관없는 각종 행사가 기성품처럼 온 동네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동네의 모습 앞에 내가 알고 뛰어놀던 동네의 모습은 점점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연희동은 주민이 먼저, 이웃이 먼저라는 동네의 제1원칙을 잊지 않고 있다. 나의 동네, 우리의 동네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다. 마을 계획단에서 새로 준비하고 있는 ‘마을 공동부엌’은 다 같이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으며 이웃 간의 정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연희동은 주민들에게 ‘함께’의 가치를 알려주고 동네를 찾은 손님에게는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선물한다. 연희동을 세심히 관찰해 현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가려 애쓰는 마을 주민들. 반상회를 귀찮아하며 나 몰라라 하는 현대인 사이에서 이들의 이런 노력은 더욱더 빛이 나는 듯하다.     


나이가 들고 살던 동네를 떠나오면서 어느새 동네보다는 집이라는 가치에 더욱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웃과 우리라는 가치보다 나의 삶과 나의 공간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받아들이고 인생의 당연한 절차라 여겨왔다. 그러나 동네의 정겨움을 담고 있는 연희동 앞에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동네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연희, 걷다’는 연희동의 모습을 틀에 박힌 방식으로 표현하는 대신, 예술가들이 많은 연희동만의 특색을 살려 예술이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동네를 풀어내고 있다. 그 덕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연희동만의 동네 축제가 생겨난 것이다. 예술로 뒤덮인 연희동에서 나는 동네와 이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예술의 아름다움 속에서 이웃이라는 더 고귀한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연희, 걷다’는 추억 속 동네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동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동네에 대한 추억만을 가지고 동네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동네를 잊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동네를 이끌어가고 있다. 숨바꼭질이나 얼음 땡은 이제 시시한 놀이가 되어버렸지만,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연희, 걷다’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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