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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 Jan 11. 2021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손이 가요, 손이 가)




 살면서 문득,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것을 하다 두근대고 흥분되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혹은 평온하고 안정적인 기분을 느끼는 순간.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부터 얘기할 것은 후자의 감성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곧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최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바로 강아지를 쓰다듬는 일이다. 뽀송뽀송하고 윤기 나는 털을 흩날리며 힘차게 꼬리 치는 모습을 보거나, 살며시 옆으로 다가와 혓바닥을 빼꼼히 내밀고 쳐다보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강아지에게 손을 뻗고 마는 것이다.


 한 번도 강아지를 쓰다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쓰다듬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아지 털의 부드러운 감촉과 강아지가 짓고 있는 무해한 표정이 합쳐졌을 때, 그때의 사랑스러움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으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의 안정감이 찾아온다. 이것은 삶에 찌든 현대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을 만한 큰 유혹일 것이다. 특히 강아지 귀 뒤쪽의 연약한 털을 찬찬히 만져주면 기분이 좋은지 슬며시 눈을 감기도 하는데, 그 순간엔 마치 남북이 통일된 것 같은 평화로움과 푹신한 침대에 파묻힌 듯한 포근한 만족감이 가슴에서 마구 피어오른다. 강아지의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털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것이다. 


 세상에 상처받고 우울해질 때도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강아지를 보며 자신의 필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자신이 아직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 ‘자존감 수업’을 꼭 책으로 해야 한다고 누가 그랬나. 이젠 강아지와 함께 자신을 재확인하는 힐링 캠프를 열어보자.


 하지만 좋아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강아지라고 해서 자신의 몸을 거저 내어주진 않는다. 모든 관계에서는 Give&Take가 필수. 그 법칙은 강아지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널 오래 쓰다듬겠다는 의미를 담아 개 껌을 내밀었을 때, 강아지가 덥석 받아 물어 옆에 철퍼덕 드러눕는다면 그건 이번 거래가 원만히 성립되었다는 의미다. 강아지의 위장이 파티를 벌이는 동안, 나는 마음껏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혹여 개 껌이 없는 상황에서는 대화로 협상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모든 스킨십엔 합의가 필요한 법이므로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보통 이 경우엔 원하는 걸 얻기가 쉽지 않다. 강아지의 기분이 좋을 때나 영혼의 대화가 통할 때가 아닌 이상, 나가서 개 껌을 사 오는 편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이렇게 강아지를 구워삶아 놓은 뒤엔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심각한 비염에 알레르기까지 달고 사는 예민한 부류기 때문에 강아지의 털 빠짐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덮은 뒤 빗을 들고 강아지 앞에 선다. 그런 다음 반항하는 강아지를 붙들고 온몸을 구석구석 빗겨준다. 요즘 같은 털갈이 시기에는 한없이 빗어도 계속 빠지는 화수분 같은 털을 만날 수 있다. 대충 작업이 마무리됐다 싶을 땐 고생한 강아지에게 개 껌을 주며 쓰다듬기를 시작한다. 쓰다듬는 일이 끝나면 테이프를 가져와 온몸에 붙은 털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바로 욕실에 들어가 씻어내는 일까지 마쳐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려움과 기침 때문에 고생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좋아하는 것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에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서는 장애와 역경을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강아지 쓰다듬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강아지뿐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같은 강아지를 키우더라도 강아지에게 받는 영향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내 경우에는 강아지를 말없이 쓰다듬으며 감정의 교류를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엄마의 경우에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보단 말동무 상대로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My Favorite Things’라는 곡이 나오는데, 그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개한테 물렸을 때, 벌한테 쏘였을 때, 슬픈 기분일 때, 그것을 생각하면 싫은 기분은 없어져.’ 자신이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을 소개한 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뭐든 중독은 좋지 않지만, 싫은 기분을 사라지게 만드는 강아지 쓰다듬기야말로 끊을 수 없는 My Favorite Th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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