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서둘러 그릇을 치우고 남편에게 산책을 청했다.
밤 9시가 다 된 시각이었지만,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이웃들이 제법 많이 나와 있었다. 운동기구에 몸을 맡긴 사람, 배드민턴 네트 너머로 셔틀콕을 날리는 이들, 그 사이를 매끄럽게 가르는 자전거까지. 산책로는 밤의 생기로 가득했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어김없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출장 연수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점심에 먹은 음식이 체한 듯 얹혀 있었는데, 남편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운동기구 앞에서 허리를 뱅뱅 돌리며 몸을 푸는 사이, 낮 동안 쌓인 긴장도 기분 좋게 풀려나갔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곁에는 배드민턴 가방을 멘 젊은 커플이 서 있었다. 운동 직후의 건강한 활력이 느껴지는 그들은 손을 꼭 잡고 사랑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옆의 또 다른 연인도 꼭 붙어 서서 귓속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예순을 넘긴 우리 부부도 그들 틈에서 손을 꼭 잡은 채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 바로 옆에 한 젊은 여성이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가슴에 꼭 안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불이 켜지고 길을 건너자마자 남편이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저 아가씨, 우리가 다들 손잡고 애정 행각(?)을 벌여서 그런지 표정이 영 편치 않아 보이더니 황급히 가버리네.”
주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예민한 남편은, 저 아가씨도 곁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저렇게 서둘러 가지 않았을 거라며 나름의 상상을 보탰다.
그 아가씨에게도 소중한 연인이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남편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이런 뜻일 게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도 좋지만, 역시 사람과 손을 맞잡고 걷는 풍경이 더 보기 좋더라는 평소의 지론이 삐져나온 것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청년들을 보면 “저러다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나”라며, 생판 남에게 부모 마음을 투사하는 오지랖을 떨곤 한다.
자식 또래 아이들을 향한 걱정이 ‘꼰대’ 같은 참견으로 번진 셈이다. 하지만 육십 년 넘게 살아보니 역시 제일은 사람의 온기다 싶다.
강아지도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마음이 통하는 짝을 만나 그 온기를 나누며 걷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긴 산책길을 걷다 혹여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려 할 때, 바로 곁에서 내 손을 꽉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지치지 않고 삶을 완주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아본다. 강아지를 안고 가던 그 아가씨에게도, 다음 산책에는 비어 있는 그 손을 꽉 채워줄 누군가가 함께하기를 조용히 응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