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큰딸의 결혼을 준비하며 나는 생애 가장 지독한 마음고생을 했다. 갈등의 씨앗은 '하객 초청' 문제였다. 딸은 단호했다.
본인이 모르는 하객들이 예식장 뒤에 서서 웅성거리는 모습은 싫다고 아니 그보다 참석한 하객은 모두 자리에 앉게 하고 격조높은 결혼식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의 지인이나 친척들은 초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사위와 딸 모두 대학병원 수련의라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동기들의 호텔 결혼식을 본 뒤로 그 고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아니, 매료된 것을 넘어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두고 통보해왔다.
부모는 그저 입을 닫고 있어 달라는 자식의 태도 앞에서 나는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나름 무지하지 않은 부모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똑똑한 자식들 앞에서 나는 일순간 의사 자식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바보' 취급을 당했다.
사실 딸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허접한 옷이나 신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아이였다. 아이들이 그런게 정상이긴 하겠지만, 엄마의 경제 사정보다 자신의 취향이 더 중요했던 아이로 보였다.
레지던트 1년 차라 벌어둔 돈도 없으면서, 부모에게 최소한의 부담만 주겠다며 지인 중심의 스몰 웨딩을 고집했다.
나는 적어도 직장 동료들에게는 첫딸의 혼사를 알리고 싶었다. 비용을 내가 부담하겠노라 제안했지만, 딸은 시아버지 친척이나 직장동료가 거의 없으니 사위 쪽 집안 분위기에 맞추겠다며 요지부동이었다. 뜻을 굽히지 않는 나를 향해 딸은 가슴을 후벼 파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 남들한테 의사 딸이랑 사위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
속을 들킨 기분이었다. 고생해서 키운 자식이니 그날 하루쯤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던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딸은 그 마음을 엄마가 가져서는 안 될 '저질스러운 욕망'으로 정의해 버렸다.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자책했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후회와 부모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로 키웠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 자식이 내 인생에 무슨 소용인가 싶어 교육의 근간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인연을 끊자’는 극단적인 말까지 내뱉었지만, 결혼을 앞둔 아름다운 신부의 마음을 더는 다칠 수 없게 할 수 없어 늘 그랬듯 내가 먼저 물러섰다.
"자식이 결혼하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이별을 해야 한다." 선배 부모들의 그 넋두리가 비로소 뼈저리게 공감되었다.
사실 문제는 나였다. 큰딸은 언제나 자기주장이 강했고 제 고집대로 살던 아이였다. 결혼한다고 해서 갑자기 부모의 뜻을 받드는 '효녀'로 변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이는 원래 그 모습 그대로인데, 엄마라는 이름의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가 택도 없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문득 나의 형제들을 떠올려본다. 4남매 중 외동딸로 자라며 오빠와 남동생들을 봐왔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한 지붕 아래 부대끼며 살았을 뿐, 그들의 내면을 나는 전혀 몰랐다. 형제와 나는 우연히 같은 호텔 룸을 차례로 사용한 투숙객처럼, 같은 뱃속에서 잠시 머물다 나왔을 뿐이다.
내 두 딸 역시 닮은 듯하지만 서로 딴판이고,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완전한 타인이다. 수억 년 전 조상들의 어떤 DNA가 섞여 저 아이들을 만들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보내는 유전자의 신호를 오해 없이 알아차려 주는 것뿐인데, 나는 수시로 오해하고 내 마음을 투사하며 그들을 아프게 했다.
다행히 큰딸의 제안(?)대로 작은딸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대규모 웨딩을 원했던 작은딸의 취향 덕에 지인과 친인척들이 모두 모여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스몰 웨딩과 대규모 웨딩을 모두 겪어본 지금, 내 마음에는 더 이상 억울함이 남아있지 않다.
이제야 안다. 자식은 내 인생의 트로피가 아니며, 그들의 결혼식은 부모의 보상 잔치가 아니라는 것을.
각자의 우주를 가진 타인들이 잠시 우리 집이라는 정거장에 머물다 제 갈 길을 떠나는 뒷모습을, 나는 그저 기꺼이 지켜봐 주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