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 국립대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내가 입학하던 해, 영어교육과는 의예과와 합격선을 나란히 할 만큼 이른바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학과였다.
어머니의 권유와 높은 성적에 맞춰 선택한 길이었지만, 화려한 입시 결과 뒤에 숨겨진 내 실상은 초라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영어 듣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전형적인 ‘귀머거리 세대’였기 때문이다.
졸업 후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했지만, 정작 나는 영어를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 사실이 사무치게 부끄러웠다.
80년대 후반, 화면조차 고르지 않은 미군 방송(AFKN)이 유일한 청취 통로였고, 대학 교과과정에는 회화 수업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어학원 초급반을 두 달 다닌 것이 회화 경험의 전부였던 내게 교단은 매일이 가시방석이었다.
학부 시절, 언어 습득에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고 배웠다. 생물학적으로 언어를 정상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제한된 시기, 이 시기를 놓치면 완전한 습득은 불가능에 가깝다.
외국어 습득 역시 소리와 리듬을 몸에 저장하는 '민감기'라는 3~7세가 중요하다는데, 나는 그 시절 영어를 만난 적이 없었다.
중학교에 가서야 알파벳을 깨치고 교사의 입을 통해 처음 영어를 접했으니, 60년대 생인 내가 영어 귀머거리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나를 극단으로 몰아붙였다.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이 유행하던 시절, 내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먼저 귀에 들리는 영어를 모두 알아 듣고 싶었다.
귓구멍이 조용할 틈이 없었고, 고장 나 내다 버린 워크맨만 해도 열 개는 족히 될 것이다. 미친 듯이 듣고 또 들었지만 원어민의 연음과 속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받아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청력에 손상이 올 정도로 청취에 집착했다. 하루에 수백개의 어휘를 반복해서 외워 몰라서 놓치는 소리가 없도록 했었다.
그것은 영어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기도 했고, 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처절한 생존 본능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십 년간 영어라는 목표를 향해 죽기 살기로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학자들이 말하는 언어습득에서 '결정적 시기'나 '민감기'는 가설이 아닌 냉혹한 사실이었다.
수십 년의 노력에도 나는 원어민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어쩌면 민감기를 놓쳐버린 나이든 세대로서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나는 늘 영어에 허기진 채 살았고, 지금도 불만족하다.
그런데 참 허망한 일이다. 평교사를 거쳐 교감이 되고, 이제 교장이 되고 보니 정작 영어를 사용할 일도 가르칠 일도 없다. 마구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멍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뭐하려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영어에만 매달렸나 싶었다.
동료들은 해외여행 갈 때 유창해서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골치 아픈 자유여행보다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이 속 편하다.
현지에서도 애써 영어를 뱉기보다 번역기 앱을 켜는 것이 백배는 쉽다. 내가 영어 선생이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말이다.
평생 나를 달달 볶으며 혓바닥과 귀에 새겨 넣었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은 이제 뇌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치열했던 나의 ‘귀머거리 탈출기’는 그렇게 평온하고도 허무한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내 애증의 대상이었던 남의 나라 말 ‘영어’를 빼고 나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솔직히 이제는 영어를 영원히 잊고 살고 싶다.
평생을 팽팽하게 당겨왔던 활시위를, 이제야 비로소 놓아주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