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의 구원자인줄 알았다.

by 해림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둔 절에서 수시로 문자가 온다. 백중, 지장 재일, 관음재일…. 정확한 불교 용어의 의미는 몰라도, 부모님이 평생 제사를 올리던 날들을 챙기며 나는 어느덧 '반(半) 불교 신자'가 되었다. 주말이면 집 근처 절을 찾아 어머니 위패 앞에 두 번 절을 올리고 잠시 앉았다 오는 것이 나의 조용한 일상이자 루틴이 되었다.


어느 행사 날,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도착한 법당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절할 공간조차 없어 문밖에서 겨우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마 같은 할머니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갑니다." 다음번엔 기필코 일찍 오리라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다음 행사 날, 작정하고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으나 법당 바닥은 이미 주인을 대신한 방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른바 '명당'은 모두 임자가 정해져 있었고, 특히 에어컨 앞을 차지한 할머니들은 발로 자기 방석을 사수하며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위패 앞으로 가기 위해 방석 사이를 조심스레 헤집자, 한 할머니가 방석을 밟는다며 핀잔을 주었다.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방석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방석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네요!“


큰소리를 내뱉고 어머니 위패 앞으로 향했지만, 당사자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저것이 종교인의 지극한 불심인가, 아니면 지독한 이기심인가. 씁쓸한 기분으로 법당을 빠져나오며 나는 문득 그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내 어머니를 보았다.


나의 어머니는 수행하는 스님처럼 평생을 불경 공부에 매진하셨다. 카세트테이프 시절부터 불교 방송을 하루도 빠짐없이 청취하고 녹음하며 반복해 들으셨고, 각종 법문에 빨간 볼펜으로 빼곡히 해설을 달아 수십 권의 노트를 남기셨다.


노년에는 굽은 허리를 이끌고 기어코 교통이 불편한 유명 사찰의 법회에 참석하셨다. 청력 때문에 법회 앞자리를 사수하려던 어머니의 기세 또한 저 할머니들 못지않게 대단했으리라. 평생의 고단함에서 우러나온 그 억척스러움은 어머니를 누구의 간섭도 허락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자발적으로 어머니의 구원자를 자처했다. 외동딸인 나만이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는 비장한 사명감을 나에게 부여했다. 시댁에는 가물에 콩 나듯 안부를 전하면서도, 어머니에게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 안위를 확인했다.


어머니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 가족의 삶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억지로 끼워 넣었고, 그 덕분에 내 식구들도 덩달아 고달픈 시간을 보냈다. 한밤중에 법문을 틀어놓고 웅크린 채 홀로 잠자리에 들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로 밤을 지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정작 어머니는 당신의 외로움을 딸인 내게 호소하신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깨달았다.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난리법석을 떨었다는 것을. 내가 어머니를 챙긴다는 명목하에 오히려 어머니의 삶을 방해하고 구속한 '악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직면했다.


내 삶이 고달파질수록 어머니는 내게 '짐'처럼 느껴졌고, 나의 '돌봄'은 어느 새 집착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좀 더 유연한 부모가 되어주길 바라며 수십 년간 쏟아부었던 잔소리는 부질없는 에너지 낭비였다.


어머니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고, 그저 본인의 뜻대로 사시다 가셨을 뿐이다. 어머니가 홀로 감내하던 외로움과 불편함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쩌면 자식의 시시콜콜한 간섭 없는 온전한 자유가 어머니에겐 더 소중했을지도 모른다.


법당 안에서 본인의 자리를 사수하던 할머니들을 보며, 우리 모녀의 세월을 관통하는 한 문장에 다다랐다.

‘너무 애쓰며 살지 마라. 그러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태주 시인의 구절을 빌려 나 자신을 보듬어본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한 셈이니, 이제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다독여줄 차례다.


나는 오늘 어머니와 나의 질긴 인연을 객관적으로 분리해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이제는 상상 속에서 어머니와의 인연을 새롭게 써보려 한다.


지난 세월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다. 나는 내 두 딸처럼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귀한 딸로 자라나, 평생 어머니의 철저한 보살핌 속에서 마음껏 응석 부리며 살아가는 그런 행복한 '외동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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