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엄마 해.”
퇴근한 큰딸이 박사 학위 논문을 쑥 내밀었다. 마치 읽다 만 잡지책이라도 건네듯 무심한 그 손길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최소 부수로 다섯 권을 찍었는데, 한 권이 남아서 나를 주는 거란다. 만약 남지 않았다면 구경도 못 할 뻔했다. 본인은 온라인으로 보면 된다며 박사 학위 따위 별거 아니라는 식의 태도가 평소 냉철한 내 딸답다 싶었다.
두 아이의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병원 근무까지. 그 가혹한 일정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나는 잘 안다. 저녁 수업과 세미나를 사수하고, 국내외 학회 발표를 이어가며 여러 편의 논문을 학회지에 실어야 했던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나 역시 딸보다 늦은 나이에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기에, 그 뼈가 아리는 고단함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딸은 매사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려 애쓴다. 가끔은 너무 냉정한 모습에 서운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언젠가 딸은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말 뒤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느끼는 아이.
그 고백을 듣고서야 나는 과거 딸의 삭막했던 행동들이 타고난 ‘공감의 결이 다름’에서 기인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딸이 남은 논문 한 권을 내게 건넨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엄마야말로 자신의 노고를 가장 소중히 여겨줄 첫 번째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툰 감사의 표현 대신 “그동안 고마웠어요”라는 진심을 담은, 딸 나름의 가장 강렬하고 진실된 몸짓인 셈이다.
딸이 공부하는 동안 나는 사위를 도와 아이들을 돌봤고, 레지던트 박봉에 버거운 학비를 보태며 ‘네가 의대 교수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묵묵히 지지해 왔다.
문득 나의 박사 학위 논문이 까만 커버를 입고 세상에 나왔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도교수를 제외하고 200페이지가 넘는 그 두꺼운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준 사람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유일했다.
영어교수법을 학교현장에 적용한 논문이라 통계와 그래프, 숫자로 가득해 전공자가 아니라면 흥미를 갖기 힘든 내용이었다. 당시 여든이 다 되셨던 어머니가 이해하기엔 분명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단한 나의 어머니는 며칠에 걸쳐 논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끝까지 읽어내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딱 한 마디를 남기셨다.
“이런 걸 혼자서 다 했나? 정말 대단하다……!”
그 한마디는 지도교수의 백 마디 칭찬보다 강렬한 보상이 되었다.
박사 학위라는 타이틀을 위해 바쳤던 열정과 그 대가로 내어준 소중한 순간들을 논문 한 권으로 갈음해야 하는 복잡미묘한 내 마음을, 어머니만은 오롯이 공감해주셨다.
딸이 내민 논문을 손에 쥐니 그때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빛이 겹쳐진다.
비록 나는 영어 선생 출신이지만, 어머니처럼 영어로 된 딸의 의학 논문을 우직하게 읽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들끼리만 알아먹는 용어들이라 챗GPT의 도움을 빌린들 내가 가져다 쓸 지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딸의 학위 논문을 거실 장식장 위, 나의 교장 임명장과 나란히 세워두었다. 논문의 내지가 누렇게 변할 때까지, 여기에 두고 오래오래 바라보려 한다.
어머니부터 3대에 걸쳐 이어온 배움에 대한 지독한 집념과 서로의 노고를 귀하게 여기는 이 고요한 존중의 기록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