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모차는 유모차를 대신할 수 있을까?

by 해림

2021년, 첫 손녀가 태어났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첫걸음을 떼기 전, 외할머니인 나는 손녀가 탈 유모차를 선물했다. 네덜란드에서 한 달을 날아온다는 수입 유모차의 가격은 무려 159만 원이었다.


누군가는 '하차감'을 위해 억대 외제차를 몬다더니,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는 백만 원이 넘는 유모차 정도는 밀어줘야 아이의 체면을 살려주는 일이라 생각하나 싶어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첫 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 아까울까. 기꺼이 지갑을 열어 딸의 계좌로 송금을 마쳤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유모차에 비해 너무도 작았던 아이는 어느덧 그 공간을 꽉 채울 만큼 부쩍 자랐다.


손녀의 근사한 유모차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옛 기억이 교차한다. 첫딸의 유모차는 시누이에게 물려받은 헌 것이었다. 둘째가 태어난 뒤 형편이 조금 나아져 처음으로 새 유모차를 장만했는데, 파란 차양 덮개가 달린 국산 제품으로 당시 몇만 원 남짓했던 기억이 난다. 큰딸은 그 유모차가 무척 좋았는지 동생을 태우고 직접 밀어주기도 하고,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 놀며 깔깔대곤 했다.


최근 저출산을 우려하는 기사에서 아기 유모차보다 반려견을 위한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심지어 비싼 개모차는 웬만한 유모차 가격과 맞먹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가끔 딸 부부의 유모차 산책에 동행하면, 길 위에서 아기보다 개모차에 탄 강아지들을 더 자주 마주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갓 미용을 마친 귀여운 강아지들보다 우리 집 손녀가 행인들에게 더 귀한 구경거리가 되곤 한다. 어르신들은 유모차 속 아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고, 유모차가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신다. 그럴 때면 손주가 훈장인 양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가 귀한 시대라는 웃픈 증거다.


나의 어린 시절, 마당에는 늘 강아지들이 있었다. 식구들이 마루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짖어대던 녀석들, 기회만 되면 대문 밖 넓은 세상을 꿈꾸며 탈출을 감행하던 녀석들. 그들은 결국 목줄을 끊고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동네를 돌던 개장수의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둘째 딸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맞벌이 부모가 비운 집이 무섭다며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다. 거북이나 토끼로 달래보려 했지만 결국 3개월 된 순박한 시추 한 마리를 들였고, ‘초코’라는 이름의 그 녀석은 우리 집 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은 초코의 밥을 챙기고 배변 패드를 갈며 처음으로 ‘보살핌’이라는 책임감을 배웠다. 일하는 엄마의 귀가를 기다릴 때 초코는 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는 속 깊은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사랑받던 초코는 13살 나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심장이 약한 종이라 마지막 2년은 비싼 약으로 버텼지만, 어느 날 밤 큰딸의 품에서 결국 생을 마감했다.


말년에 숨을 헐떡이며 산책을 나가던 늙은 초코는 개모차를 타는 호사를 누려보지 못한 채 떠났다. 13년 동안 강아지 수발을 들며 느낀 점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그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싱글인 동료 교사들은 주말이면 강아지와 애견 카페에 간다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다. 그들이 왜 이런 정성을 쏟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인 듯하다.


동물은 인간에게 말 없는 충성심을 바치고, 무엇보다 내 사랑을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거는 기대치만큼 동물에게 바라지 않기에, 상처받을 두려움 없이 마음껏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이리라.


남편은 늘 말한다. 우리가 초코를 키운 게 아니라, 초코가 우리 아이들을 키웠노라고. 초코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의 엄격한 질책 속에서도 안식처를 찾았고,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며 생명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초코는 어떤 존재였을까. 온 우주를 통틀어 나에게 절대 반항하지 않고 말대꾸하지 않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음식 냄새에 찌든 나의 체취조차 누구보다 반겨주던 아이. 그래서 나는 초코 말고는 다른 강아지를 들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먼저 떠난 강아지는 나중에 주인이 죽으면 마중을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역시 먼 훗날,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줄 초코를 상상해본다.


색깔 예쁜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마음이 환해지는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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