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싫어. 예쁘지도 않고 발음도 촌스러워.”
이미 대학까지 졸업한 큰딸이 어느 날 갑자기 꺼낸 고백이었다. 그 이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가 태어날 당시, 유명한 작명소에 거금을 주고 지어온 귀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딸이 제 이름을 부정하는 순간,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엄마가 새로 지어올게. 진작 말하지 않고 왜 이제야 말하니?”
내가 한술 더 떠 대답한 것은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당시 딸은 의예과 진학에 실패한 뒤, 국립대 생물학과를 다니며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번의 실패 후 자신감을 잃은 아이는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었다. 딸이 내뱉는 미래는 늘 비관적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대학 학점 관리와 공인 영어시험, 그리고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 미트(MEET) 준비까지. 독서실과 학원을 오가며 말라가는 딸의 어깨 위에는 '엄마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이 얹혀 있는 듯했다.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를 수료할 만큼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 하던 아이는, 결국 ‘이름이 좋지 않아 인생이 꼬였다’는 나름의 진단을 스스로 내리기에 이르렀다.
나는 당장 용하다는 철학관으로 달려갔다. 딸의 사주를 받아 든 작명가는 이름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며 열을 올렸다. 사주에 불(火)이 많은 아이에게 나무(木)를 쏟아부었으니, 제 몸을 태우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무시무시한 해석을 내놓았다.
작명가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개명을 의뢰했다. 일주일 뒤, 새로 받은 이름에는 글자마다 시원한 물(水) 자가 박혀 있었다.
무엇보다 딸이 그 이름을 마음에 쏙 들어 했다. 나 역시 불러보니 어감이 세련되어 좋았고, 평판 좋은 유명 연예인과 이름이 같아 더욱 흡족했다. 영어 표기마저 수월한 이름이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본인이 사랑하지 않는 이름은 결코 좋은 이름일 리 없다. 당사자 마음에 드는 이름이 최고의 이름인 법이다. 어쩌면 제 사주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기에 그토록 그 이름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개명 덕분인지, 아니면 이름이라는 핑계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덕분인지 딸은 그해 보란 듯이 의전원에 합격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한 후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를 만나 예쁜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모든 성취가 개명 덕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딸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개명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고 확신한다.
사실 나 역시 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예순 해를 살았다. 나도 진작 이름을 바꿨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었을까. 새삼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자문해 본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도 이름을 바꿔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