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실에 남은 낡은 카펫

by 해림

우리 집 거실에는 25년 된 카펫이 주인처럼 버티고 있었다.


1999년, 새 아파트에 입주하며 백화점에서 거금을 주고 산 벨기에산 양모 카펫이었다. 24평에서 34평으로 집을 넓혀 이사하며 주방까지의 동선이 길어진 게 어색해, 발바닥이 아프다며 남편에게 엄살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그 광활해진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당시 백만 원이 넘는 지출을 감행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내 형편에 참 '간덩이가 부은' 선택이었다.


무게가 어찌나 상당했는지 성인 둘이 겨우 들 정도였다. 매년 초여름이면 세탁소 직원을 불러 원정을 보내야 했고, 혹여 곰팡이라도 필까 노심초사하며 모셔 온 세월이 어느덧 사반세기다. 열 번이 넘는 이사에도 이 무거운 카펫을 애지중지 들고 다닌 건 거금을 들였다는 미련 때문이기도 했지만, 특유의 포근하고 안락한 질감 덕분이기도 했다. 그 위에 누우면 어느새 잠이 솔솔 오고, 깜빡 정신을 잃을 만큼 평온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찌든 때는 지워지지 않고 색은 바랬으며, 뒷면은 삭아 불쾌한 냄새까지 났다. 이제는 정말 이별할 때였다. 세탁비 걱정 없는 가벼운 것으로 바꾸리라 다짐하며 남편과 함께 이케아로 향했다.


그때부터 예상치 못한 소동이 시작되었다. 털이 짧은 단모 카펫은 발자국이 남아서 반품, 무늬가 예뻐 덜컥 들고 온 것은 집 분위기와 맞지 않아 또 반품. 결국 가장 비싼 100% 양모 카펫을 들여왔으나, 누워보니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거친 질감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카펫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안목이 한심해 "그래, 발만 디디고 살자"라며 반품을 포기했다가 하룻밤 지나고 다시 기운을 차려 먼 길을 나섰다.

매장 직원이 반품 사유를 묻자 "북유럽 사람들은 카펫 위에 절대 안 눕나 봐요. 등이 따가워 죽는 줄 알았네요!"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전 카펫과 가장 유사한 색감과 질감의 카펫을 찾아냈지만, 우리 부부는 "북유럽 스타일은 조선인에게 언감생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왕복 20km가 넘는 길을 네 번이나 오갔으니, 25년 동안 내 몸뚱이를 받아내 준 옛 카펫에게 고사라도 지내지 않고 버린 대가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고작 무생물인 카펫 하나 밀어내는 데도 이토록 요란한 소동이 필요한데, 하물며 평생 곁에 계시던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일은 오죽할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첫여름을 맞았다. 장례를 치르고 추모 공원에 안치해 드린 뒤 49재까지 마쳤으나, 어머니는 여전히 어딘가에 계신 듯하다. 생전에는 주말만 되면 피곤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어머니 집으로 달려갔었다.


지금은 늦잠을 잘 수 있는 평온한 주말 아침을 맞이하고 있지만, 내 손발은 갈 곳을 몰라 서성인다. '이렇게 내 몸이 편해도 벌 받지 않을까' 하는 자학적인 두려움이 엄습하고, 가끔은 "요양병원 면회 가야 하는데!"라며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기도 한다.


거실 바닥에 새로 깐 카펫에 누워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오래되고 낡은 카펫은 몇 차례의 소동 끝에 색 고운 대체물로 갈아치울 수 있었다. 아파트 폐기물 처리장에 내던진 이전 카펫은 이제 깡그리 잊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떠나고 난 내 마음의 거실에는 아픈 기억들이 옹기종기 모여 똬리를 틀고 앉아 떠날 기색이 없다.


어쩌면 내가 꼬부랑 노인이 되어 죽음의 자리에 드는 그날까지, 이 아픔은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내 심장을 조이며 지독한 통증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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