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중고 마켓에서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했다.
몇 달간 알림 설정을 해두고 망설이기를 여러 번, 방학을 맞아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8년 된 모델이지만 상태가 좋은 피아노를 단돈 17만 원에 들여왔다.
한때는 누군가의 거실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을 묵직한 녀석을 남편과 낑낑대며 작은방에 놓아두고 나니, 절로 ‘씩’ 하고 웃음이 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나만의 피아노가 생겼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조심스레 건반을 눌러보았다. 이게 얼마 만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개인 교습을 받았으니 무려 5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피아노 치러 가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엄격한 선생님의 표정 앞에서 나는 늘 잔뜩 긴장해 있었고, 선생님의 설명은 번번이 귓가를 튕겨 나갔다.
하루는 계이름을 빨리 읽지 못해 선생님 몰래 악보에 연필로 계이름을 적어두었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얼른 지우려는데, 하필 연필 뒤에 지우개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침을 묻혀 문질렀더니 종이가 흉하게 부풀어 올랐다.
돌아온 선생님 곁에서 나는 자존심 상한 아이의 표정으로 그 ‘상처 난 악보’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떼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던 선생님의 시선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어머니는 억지로라도 나를 피아노 앞에 앉히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애도보다는 ‘이제 피아노에 안 가도 된다’는 안도감이 앞섰을 만큼 나는 피아노가 진저리 나게 싫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평생 음악 앞에서 ‘패배자’로 살았다.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만 보면 식은땀이 났고, 음악 이론 시간에는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하며 스스로를 ‘음악치’라 자처했다.
피아노를 들인 날부터 유튜브를 켰다. 단계별 레슨 영상을 보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다. 예순이 넘어서야 낮은음자리표를 정확히 읽는 법을 배웠고, 음표의 기둥 방향이 왜 다른지, 옥타브와 음정의 원리가 무엇인지 이제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툴게나마 두 손을 번갈아 가며 건반을 누르니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소식을 들은 큰 딸네 가족이 총출동했다. 피아노를 마구 두드리는 손녀를 보며 딸은 내게 제대로 된 레슨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초도 모른 채 선생님 앞에 서는 것이 쑥스러워, 기본은 스스로 떼고 가겠노라 답했다.
딸은 한술 더 떠, 본인도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했으니 손녀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다녀보라며 부추긴다. 손녀에게 “발레 배울래, 피아노 배울래?” 물으니 아이는 단호하게 “발레!”라고 답한다. 나는 그 단호함이 반가워 다시 물었다.
“그럼 할머니랑 피아노 배우러 갈래?” 아이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아니!”
그래, 네가 최고다. 억지로 시키는 교육은 나 같은 ‘음악 루저’를 만들 뿐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할 때, 그때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이제야 나는 50년 전, 외동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려 애쓰셨던 어머니의 해묵은 소망을 풀어드리려 한다. 무서운 선생님과 침 묻은 악보 뒤에 숨었던 겁쟁이 딸이, 이제 스스로 건반 앞에 앉아 서툰 연주를 시작했다고 전하고 싶다.
어머니, 하늘에서 보고 계시지요? 이제야 제 발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