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적정 온도, 열 개의 화분

by 해림

책상 옆 창가에 놓인 열 개의 화초가 어느새 몰라보게 무성해졌다.

우리 학교가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 잡은 덕분일까. 바람 좋은 날 복도 쪽 창문을 열면 뒷산의 서늘한 골바람이 들이치고, 반대편 운동장 쪽에서는 포근한 해풍이 불어온다.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나의 반려 화초들은 성장 호르몬 옥신(Auxin)을 부지런히 뿜어내며 연신 새잎을 틔워낸다.


사실 나는 화초 돌보기를 꽤나 번거로워하던 사람이었다. 예전 아파트로 이사할 때는 베란다 확장을 핑계로 대형 화분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살아남으려 토기 벽면에 본드처럼 뿌리를 붙이고 버티던 그 집요한 생명력이, 당시의 나에겐 조금 버겁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화분 주변에서 개미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개미가 수백 마리로 불어날 것이라는 딸들의 경고에 못 이겨 화단에 몰래 ‘유기’하곤 했던, 나는 참 인색한 주인이었다.


그런 내가 여고 교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조금씩 ‘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학교 구성원의 대다수인 여선생님들은 여고생들처럼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책상마다 반려 화분이 놓여 있고, 화병에는 파스텔톤 꽃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학교 앞 꽃집의 단골인 선생님들은 이름도 생소한 화초를 정성껏 키워내며 서로 한 뿌리씩 나누어 주는 ‘그린 썸(Green Thumb)’의 능력을 공유하곤 했다.


이런 다정한 분위기에 편승해 식물 무관심자였던 나도 화초 몇 뿌리를 건네받았다. 물병 안에서 하얀 뿌리를 내리는 것을 지켜보다 흙에 옮겨심기를 서너 번.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화분이 열 개로 늘어나 있었다.


엄마이자 아내, 교사이자 외동딸, 그리고 외며느리라는 묵직한 이름들 속에 살며 나는 늘 나 자신보다 주변에 신경줄을 바짝 세우고 살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일이 이미 포화 상태였기에,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을 늘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으리라.


그런데 이제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화분에 먼저 눈길이 간다. 물을 챙겨주고, 삐죽이 자란 줄기를 다듬으며 화분 받침을 정성껏 닦는다.


금요일 오후에는 주말을 대비해 물을 넉넉히 채우고, 출장이 길어질 때면 대신 돌봐줄 친구까지 수소문한다. 윤기 나는 잎사귀를 유지하려니 내 일상의 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간다.


결국 오늘,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화분의 개수를 더는 늘리지 않기로 말이다. 남들에게 과시하듯 욕심을 부리다 보면, 어느 날 이 앙증맞은 화초들이 내 영역을 침범해 나를 지치게 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불편해지면 나는 또 변덕을 부릴 것이고, 저 푸른 생명들을 다시 외면하는 만행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물을 주고 잎을 매만지는 순간이 삭막한 일상의 소중한 루틴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화초를 향한 소유욕도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초록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거리, 내 책상 위는 딱 열 개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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