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새긴 박사학위

by 해림

"엄마, 이제 생활비 안 보내주셔도 돼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대학병원 레지던트인 큰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입주 베이비시터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워하던 딸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손녀가 자라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


퇴직을 앞둔 형편에 통이 너무 크다며 남편은 매번 걱정했지만, 고단한 딸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생활비를 사양하는 딸에게 사위가 군의관을 마칠 때까지는 더 돕겠다고 하자, 딸은 화들짝 기뻐하며 답했다.

"그럼 엄마, 그 돈으로 대학원 등록금 낼게요! 박사과정 시작했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잘 생각했다며 격려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딸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그 길의 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당장 내 손가락부터가 그 증거였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손가락이 말썽이다. 초저녁부터 새끼손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하면 밤새 얼음팩으로 통증을 달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손을 안 쓰면 된다"는 속 편한 소리만 하지만, 인간이 어찌 손을 쓰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사실 이 통증은 내 박사학위의 업보이자 훈장이다. 영어 교육 전공자로서의 부족함을 채우려, 혹은 유창하지 못한 실력에 뒤처진 '루저'가 되지 않으려 시작했던 공부였다. 낮에는 학교 업무와 수업을 쳐내고, 밤에는 집안일을 마친 뒤 노트북 앞에 앉아 타이핑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어릴 적 어머니를 돕느라 물 마를 날 없던 투박한 내 손가락은, 기어코 박사 논문을 써 내려가며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때로는 자조한다. 박사학위 그게 뭐라고 내 몸을 상해가며 매달렸을까. 학과 동기에게 뒤처지기 싫었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지독한 완벽주의나 허영심 때문이었을까.


"박사학위 논문 통과하는 건 얼굴에 붙은 밥풀 떼는 일이야."

어느 선배 교사의 말이 정답이었다. 밥풀 하나 붙어 있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그걸 달고 남 앞에 서는 것이 못내 부끄럽고 불편해서 기어코 떼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


나는 그 밥풀 하나를 떼기 위해 수많은 밤을 고통과 맞바꿨다. 도움이 되지 않던 지도교수의 비판을 견디며 손가락이 마비될 때까지 자판을 두드린 후에야, 비로소 내 얼굴의 밥풀은 떨어졌다.


딸들은 기억할 것이다. 하루 종일 바빠 허덕이면서도 밤마다 스탠드를 켜고 앉아 있던 엄마의 등을. 공부란 모름지기 저렇게 힘들고 처절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무의식 중에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 고단한 '밤샘'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큰딸이, 이제 아이를 키우며 다시 그 가시밭길로 뛰어들겠다고 한다. 직장과 육아, 그리고 박사과정이라는 삼중고의 길. 내가 겪었던 손가락의 열병과 통증을 딸도 고스란히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마음이 쓰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한다. 결국 그 밥풀을 스스로 떼어내고, 말끔해진 얼굴로 당당하게 웃게 될 딸의 미래를. 나의 불안을 물려받았던 딸이, 이제는 나의 인내와 성취까지 닮아가고 있었다.


* 몇 달 전 검사인 둘째 딸도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기가 이제 겨우 4개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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