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간지의 칼럼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어는 집 팔아도 안 된다.” 사교육의 성지라는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서 나도는 푸념 섞인 한탄이란다.
영어와 수학은 값비싼 과외를 붙여 어떻게든 점수를 찍어낼 수 있지만, 국어만큼은 돈을 쏟아부어도 원하는 성적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뜻이다.
모국어인데도 사교육 없이는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교육 현장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요즘 수능에서 국어는 단순한 암기 과목이 아니다. 학교 시험조차 10페이지에 달하는 문제지를 단 50분 이내에 풀어내야 하는 처절한 시간 싸움이자, 변별력의 핵심이다.
영어 교사인 내가 지켜본 바로도 국어 실력은 영어 성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소위 ‘킬러 문항’이라 불리는 난해한 영어 지문이 등장하면, 학생들은 우리말로 된 해설지를 보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매곤 한다. 킬러문항은 영어로 봐도 난해하지만 우리말로 번역해두어도 난해하니 해설지를 보고도 무슨말인지 쩔쩔헤맨다.
영어 단어는 알지만 문장이 품고 있는 맥락을 엮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국어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영어독해는 결국 오역이라는 결정적인 실수를 낳는다. 국어는 단지 한 과목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학습의 뿌리인 셈이다.
다행히 나는 두 딸을 입시 국어 학원에 보낸 적이 없다. 두 아이 모두 유아기 때부터 책의 바다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아이의 독서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큰딸은 전형적인 ‘다독가’였다. 숙제보다 책 읽는 게 좋아 혼이 날 정도로 몰입했다. 좋아하는 분야라면 몇 트럭 분량이라도 먹어 치울 기세로 읽어 내려갔다. 그 열광적인 독서 덕분에 아무리 난해한 모의고사에서도 국어 1등급은 늘 아이의 차지였다.
반면 작은딸은 ‘정독가’였다. 언니만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한 페이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논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추천 도서를 꼼꼼히 씹어 삼켰다. 스타일은 달랐어도 두 아이 모두 ‘읽는 근육’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었기에, 입시 국어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지금 학교 현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매년 수백 권의 신간 도서를 들여놓고 유명 작가를 초대해도, 아이들은 생활기록부에 한 줄 적을 수 있는 행사가 아니면 도서실을 찾지 않는다.
내신과 수능 공부가 급하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종이책과 거리를 둔다. 대신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을 켜고 자극적인 쇼츠 영상을 넘기거나, 인터넷 기사의 헤드라인 몇 개를 ‘후루룩’ 훑어본다. 맥락은 거두절미한 채 제 마음대로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된 눈동자들이 10페이지 분량의 수능 지문을 마주했을 때, 그 깊은 행간을 제대로 읽어낼 리 만무하다.
국어 성적은 학원 강사의 족집게 강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년 시절부터 쌓아온 종이책의 두께만큼 자라나는 것이다.
텍스트를 진득하게 응시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강남의 어떤 일타강사도, 집을 판 거액의 과외비도 아이들을 구원할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