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 의사 가운에 꽂힌 형광펜들이 너무 멋져 보여서!”
아주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던 큰딸에게 남편이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병원에 근무 중인 외삼촌을 만났을 때, 흰 가운과 선명한 형광펜의 대비라는 그 찰나의 색감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의 선언은 그날 이후 흔들림 없는 천명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귀여운 동경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딸은 십수 년의 고된 세월을 견뎌야 했다.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마침내 의학전문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던 날, 펑펑 울며 내게 소식을 전하던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엄마인 나 역시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인고의 시간이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요즘도 의예과 진학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 수학이듯, 딸아이의 꿈 앞에 놓인 거대한 바위 또한 ‘수학’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학습지 외판원에게 포섭되어 자발적으로 수학에 입문했던 대견한 시작과 달리 딸은 반복적인 연산 훈련을 끔찍이 싫어했다.
숙제보다는 드라마나 예능, 독서 같은 ‘스토리텔링’에 푹 빠져 사는 아이였다. 탄탄한 독서량 덕분에 국어는 최상위권이었고, 나의 열정적인 투자 덕에 영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늘 1등급을 유지했지만, 수학만큼은 아이의 자존심에 자주 깊은 생채기를 냈다.
수학 천재들이 즐비한 고교 이과반 시절, 시험만 끝나면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아 버리던 딸의 절망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나는 그 구겨진 자존심을 펴주려 한 달에 백만 원에 육박하는 고액 과외비를 아낌없이 쏟아부었고, 한밤중 학원 앞에서 차를 대기시킨 채 딸을 기다리며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뒷바라지를 다 했다.
남편의 사업 부진으로 내 봉급만으로는 과외비를 대기조차 벅차 통장 잔액을 보며 숨이 막혀오던 시절이었으나, 딸의 꿈을 지킬 수만 있다면 대출은 물론 집이라도 팔 기세였다. 그러나 좁아진 의대 문턱을 넘기에 딸의 수학 성적은 늘 한 뼘이 모자랐다. 어느 날, 지친 표정의 딸이 허탈하게 선언했다.
“엄마, 우리 집엔 수학 DNA가 없는 게 분명해.”
문·이과를 두루 공부한 남편을 생각하면 결국 범인은 문과 출신인 나였다. “딸아 미안하다. 엄마가 수학 유전자를 주지 못했구나.” 농담처럼 사과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아렸다. 수학적 사고는 정말 타고나는 것일까. 노력으로 메울 수 없는 유전자의 구멍이 존재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수학을 잘하는 유전자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내가 영어만큼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밀려왔다. 성급한 선행학습으로 아이를 다그치고, 지루한 연산을 윽박지르며 수학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기다림의 미학’을 내가 먼저 포기했던 것은 아닌지 자책했다.
나는 좌절한 딸에게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바늘구멍 같은 의예과 정시 진학 대신, 학부 4년과 의학전문대학원 4년이라는 총 8년의 긴 우회로를 택하게 한 것이다. 수학이 절대적 기준이 되는 정문의 벽 대신, 딸의 강점인 영어와 대학 학점,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동력 삼아 뒷문을 공략하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딸은 의사가 되었다. 수학 유전자가 있니 없니 투덜대면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그 지독한 성실함이 ‘수학 천재’들만 간다는 그 길을 열어준 것이다. 어쩌면 의사에게 필요한 건 복잡한 수식을 순식간에 풀어내는 천재성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인내’와 ‘공감’이 아닐까.
형광펜 색깔에 설레던 그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딸이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유전자가 부족하다면 인내심으로 직선도로가 막혔다면 우회로의 지혜로 일궈낸 이 성취는 그 어떤 천재의 승리보다 값지다.
이제 딸의 의사 가운에 꽂힌 형광펜들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한계를 넘어선 큰딸의 의지가 그려낸 훈장처럼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