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레지던트인 큰딸도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문의인 큰사위는 공중보건의로, 작은사위는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며 사위들은 딸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차출되어 불려 간다.
한 집안에서 같은 의사들인데 누군가는 사직하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메우러 호출받는 이 역설적인 형국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의 어린 시절, 의사라는 직업은 소시민과는 거리가 먼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그때의 의사들은 왜 그리도 권위적이었을까.
영어인지 낙서인지 모를 글자를 진료서에 휘갈기던 그들 앞에서, 나는 늘 주눅 든 무식한 환자였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면박당하기 일쑤였고, 친절한 설명 따위는 기대조차 할 수 없던 시대였다.
1977년 의료보험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어머니가 교사였던 덕분에 생긴 보험증을 들고 병원에 들어서면 의사들은 수입을 갉아먹는 불청객을 보듯 우리를 푸대접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10년간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추운 병실에서 의사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따뜻했던 손이 식지 않기를 바라며 온종일 그 손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지금 의사가 된 나의 오빠와 남동생은, 당시 우리가 겪었던 그 치사하고 억울한 푸대접 때문에 오기로 공부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행히 세상이 변해 이제 의사들은 환자를 소중한 고객으로 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전보다 친절해진 의사들을 향해 날 선 비난을 퍼붓는다.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하다.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언론 보도 아래 달리는 수많은 악플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 딸과 두 사위가 이토록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딸은 어려서부터 의사를 꿈꿨고 누구보다 오래 공부했다. 부족한 학비는 대출로 메웠고 그 빚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소아과 레지던트 시절, 저출산의 그늘과 보호자들의 지나친 요구에 지쳐 전공을 바꾸느라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수련의 신분이다.
월급을 털어 베이비시터 급여를 내고 남은 돈을 아껴 박사과정을 밟는, 마흔이 다 되어야 겨우 어딘가에 정착할 이 아이에게 세상은 얼마의 보상을 허락해야 그 고된 '욕 값'을 치렀다고 말해줄까.
내가 딸을 의대에 보낸 것은 노후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었다. 외동딸로 자라며 편찮으신 아버지와 일하는 엄마 사이에서 제 욕심을 숨기기 바빴던 나와 달리, 내 딸만은 자기가 바라는 일을 멋지게 해내며 살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직업이 의사였고,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그게 전부다.
유치원 시절, 여자애는 간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분개하던 꼬마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딸의 꿈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전공의 복귀 소식이 들리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직업군이 정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토록 거칠게 다뤄지는 모습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나의 통찰력은 무뎌져 가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묻고 싶다.
한 아이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꿈이 이토록 난도질당해도 괜찮은 것인지. 서서히 설득하는 요령도 없이 몰아붙인 이 진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원망 섞인 질문이 마음속에 맴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저 내 아이의 꺾인 날개가 아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