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단톡방에 핑크색 외투를 입고 토끼 헤어핀을 꽂은 손녀의 등원 사진이 올라왔다. 온 가족의 초미의 관심사는 단 하나, 오늘도 울지 않고 무사히 유치원차 탑승에 성공했느냐다.
요즘 남편은 예순여섯 나이에 새로운 보직을 맡았다. 아침마다 손녀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는 ‘등원 도우미’다.
며칠 전엔 손녀가 방 불까지 끄고 드러누워 버티는 바람에, 남편은 혼비백산하여 큰딸과 페이스톡을 연결하고 애착 인형까지 동원하는 긴급 처방 끝에 겨우 아이를 차에 실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아빠들이 새벽같이 회사로 튀어 나가는 게 당연하던 시대에 남편은 딸들을 등원시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환갑을 훌쩍 넘겨 딸자식 대신 손녀 뒷수발을 드는 남편을 보니, 역시 인생은 ‘총량제’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 나 혼자 감당했던 고생을 이제야 나눠지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거봐, 당신도 맛 좀 봐야지” 하는 고소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지만 손녀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제 엄마인 큰딸의 판박이라, 남편의 앞날이 그리 순탄해 보이진 않는다.
과거 큰딸과 친정에서 잠시 지내던 시절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가 교직에 계실 때였다. 편도가 약한 딸은 수시로 열이 났지만 봐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출근하면, 어머니가 아이를 등원시키고 학교로 향하셨다. 딸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 온갖 핑계를 대며 떼를 썼고,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주변 눈총을 뒤로하고 손녀를 당신의 학교로 데리고 출근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큰딸은 초등학교 언니, 오빠들 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하교하곤 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아이들 눈치를 살피며 살얼음판을 걷듯 출근했던 그 시절이 지금도 선명하다.
올해 나는 고등학교 교감이라는 중책을 벗고 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저녁마다 야간자율학습을 살피고 늦게 퇴근하던 일상에서 벗어났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덕에 요즘은 자발적으로 딸의 집을 찾는다.
부탁받은 건 아니지만 달려가 작은손녀를 업어주고 큰손녀 비위를 맞추다 딸이 귀가하면 후다닥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가면 사위는 아기를 앞에 매달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게다가 다섯 살 큰아이 비위 맞추랴, 아기 달래랴 아수라장인 속에서도 사위는 라구파스타를 만들겠다며 주방을 누빈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옛날 내 신세와 겹쳐 보여 마음이 짠해진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어엿한 의사 선생님이지만, 내 눈에는 그저 친정엄마가 딸을 보듯 사위가 가엽게만 느껴진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주방에서 분투하는 사위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