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침팬지와 할머니의 진화론

by 해림


지난 10월 이후, 꽤 긴 공백을 깨고 글을 쓰려고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았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내게는 그 무엇보다 합당하고 숭고한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두 손녀를 돌보는 거대한 임무에 매진해 왔기 때문이다.


공중보건의인 사위가 지방 병원 응급실로 전보 명령을 받으면서 딸아이 집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주 양육자 역할을 톡톡히 하던 사위의 부재가 잦아지자,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사위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나는 학교 업무가 끝나기 무섭게 '칼퇴근'을 서두른다. 베이비시터와 임무를 교대하고 두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오는 일상. 격주로 주말까지 반납한 채 몸과 마음이 분주한 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숨 가쁜 돌봄의 굴레 속에서 지칠 때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제3의 침팬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는 인간이 번식 연령이 지난 후에도 오래 생존하는 이유를 흥미롭게 분석한다.


여성이 폐경 후에도 몇십 년을 더 살고, 남성이 생식에 흥미를 잃은 후에도 생을 이어가는 것은 인간의 자식 돌봄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노인은 자식뿐만 아니라 부족 전체의 생존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다.


그의 문장을 곱씹으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그저 손주를 봐주는 고단한 노인이 아니라, 자연선택의 섭리를 고분고분 수용하며 인류의 위대한 생존 전략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낳은 자녀와 그들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번식의 종말을 선택한 진화의 원칙이라면 나는 그 숭고한 질서에 따라 내게 맡겨진 새끼들이 무엇보다 소중할 수밖에 없다.


폭풍 같은 돌봄의 시간이 지나고 딸과 손녀들이 돌아가고 나면, 집 안은 이내 고요의 바다에 잠긴다.


나는 남편과 마주 앉아 오늘 손녀들이 했던 말 한마디, 재롱 섞인 몸짓 하나하나를 정성껏 복기한다. 아이들의 온기가 빠져나간 허전한 공기를 데우는 것은 결국 그 아이들이 남기고 간 사랑스러운 기억들이다.


비록 몸은 고단하고 기록의 시간은 잠시 멈추었으나, '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이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귀하다.


나는 오늘도 진화의 섭리에 기꺼이 동참하며, 내가 가장 뜨겁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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