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과 거제도에 다녀왔다. 거가대교 초입에 형편에 딱 맞는 땅이 나왔다기에 구경 삼아 나선 길이다. 예전 선배들은 퇴직 전 시골 땅을 사서 텃밭 가꾸는 게 유행이었다.
지금은 호화 별장마저 매물로 넘쳐나는 세상이라지만, 나 역시 그 '한물간' 유행을 뒤늦게나마 따라가 보려 한다.
수십억 대 아파트는 없어도, 경치 좋은 곳에 6평 농막 하나 두고 주말마다 숨을 고르고 싶은 로망 때문이다.
주변 젊은 사람들은 말한다. 땅 살 돈으로 호텔에 가면 평생 대접받을 텐데, 왜 벌레 우글거리는 밭뙈기에서 사서 고생이냐고.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안락한 호텔보다 산속의 빗소리가, 농막 데크에서 듣는 새소리가 더 그립다.
내 취향은 퍽 엉뚱하다. 지인들에게는 파리지앵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추천하며 세련된 척하지만, 실상 내 채널이 멈추는 곳은 <나는 자연인이다>이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풀떼기나 뜯어먹으며 혼자만의 삶에 몰입하는 이기적인 자유를 갖고 싶다. 엄마, 아내, 교사, 외동딸로 사느라 나를 보듬을 틈 없었던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입에 침이 고인 채 몰입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분위기를 깬다. "저 사람들 촬영할 때만 저러는 거야. 속지 마!"
산속에 앉아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날이 좋으면 새소리를 듣고, 가을이면 내 손으로 뿌린 꽃씨가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내 성화에 결국 남편이 거제도 땅을 보러 나섰다.
남편이 땅 모양을 살피고 도로 상황을 따지는 사이, 나는 길가에서 '모시'와 쑥을 뜯는 분들 틈에 끼어들었다.
남편은 토지 분석에 정신없는데 나는 지천에 널린 풀떼기에 정신이 팔린 것이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 지독한 관절염이 도져 엄지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도 직접 뜯어온 모시와 쑥을 방앗간에 맡겼더니, 다음 날 향긋한 쑥떡과 쫀득한 모시 송편이 배달됐다.
땡볕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남편도 노란 콩고물에 찍어 잘도 먹는다. 오후에 놀러 온 손녀는 커다란 떡을 한입에 넣고 오물거리더니, 우유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며 나름의 노하우까지 전수해 준다.
한 봉지 싸 보냈더니 며칠 만에 다 먹어치웠단다. 어제 아침엔 쑥떡이 없어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등원 버스까지 놓쳤다니, 이게 정말 쑥떡 때문인지 유치원 가기 싫은 핑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나는 퇴근하자마자 냉동실에서 쑥떡 한 봉지를 꺼내 부리나케 손녀에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이번 거제도 땅, 사야 할 모양이다. 이놈의 쑥떡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