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을 거슬러 나에게 가는 길

by 해림

아침 7시 30분. 작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며칠간 공들여 눈여겨보았던 경로를 따라 씩씩하게 발을 내디뎠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 교장실 책상 앞에 앉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40분. 학교로 들어서는 마지막 진입로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경사다.


학생들은 익숙한 듯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가지만, 환갑을 넘긴 교장인 나는 난간을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마침내 경사로 끝에서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온몸 구석구석 혈액이 고루 전달되는 시원한 역동감과 함께 이름난 명산의 정상에 오른 듯한 정복감이 밀려온다.


나는 다른 신임 교장들이 시샘할 정도로 집과 인접한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매일 걷기에는 다소 애매한 거리라 처음에는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학교 인근의 교통 사정은 좀체 종잡을 수 없었다. 여러 학교가 밀집한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는 수많은 신호등과 보행자들로 늘 정체였다.


어느 날은 10분, 또 어느 날은 30분. 신호 대기선에 갇혀 지각을 걱정하며 애를 태우느니, 차라리 걷기로 결심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체력을 길러야 이 무거운 교장 노릇도 기운차게 해낼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오늘 내가 걸어온 이 길은 사실 중학생 시절 매일 같이 오가던 바로 그 길이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무려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 다시 이 길을 걸어 출근하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살던 옛 동네는 지금의 사는 아파트와 그리 멀지 않았고, 모교였던 중학교 역시 지금 근무하는 학교 지척에 있었다.


당시의 등굣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비포장도로가 겨우 정리되던 터라 시내버스는 늘 부족했고, 학교 밑을 달리던 유일한 노선은 학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콩나물시루였다. 버스비를 아껴야 하기도 했지만, 시커먼 남학생 무리에 부대끼는 것이 싫어 나는 걷는 쪽을 택했다. 그 시절의 교복은 얇고 보온성이라곤 없었다.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얇은 스타킹 하나에 의지한 채 등교하던 내 다리는 늘 동상에 걸린 듯 얼어붙어 통증을 앓았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교문에 이르는 그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여름이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경사로를 올랐지만, 도착한 교실엔 선풍기 한 대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중학교 시절이 유독 우울하게 기억되는 건 단지 문명의 혜택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당시 내 정신을 온통 지배했던 것은 그늘진 집안 형편이었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와 과로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보며, 나는 아이답지 않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작은 어른'이었다. 늘 걱정을 한 보따리 안고 풀이 죽어 걷던 소녀, 그게 바로 나였다.


정신을 놓고 걷다 진흙탕에 미끄러져 얼굴을 붉혔던 일, 백혈병으로 떠난 친구를 보며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 벽돌을 나르는 마차에 매여 지친 눈동자를 굴리던 말들의 모습까지. 기억의 조각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침울한 장면들뿐이었다. 그때는 이 근처엔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교장이 되어 다시 이 길 위에 서 있다.


오늘 아침은 여전히 쌀쌀했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찬바람을 막아줄 든든한 패딩과 기능성 운동복이 있고, 손가락에 땀이 찰 정도로 포근한 캐시미어 장갑이 있다. 쿠션감이 뛰어난 운동화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헬스 앱은 7천 보를 채웠다며 축하의 팡파르를 울려준다. 남편이 선물한 시크한 선글라스 덕분에 매서운 바람 앞에서도 내 눈물샘은 평온하기만 하다.

환갑을 넘기고 돌아보니, 이제 나는 그때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야무지게 자란 두 딸은 제 몫의 직업을 가졌고,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들도 생겼다. 명실상부한 '복 많은 교장'이 된 셈이다.


오래전 그날, 정전기로 몸에 달라붙던 불편한 동복을 매만지며 병든 아버지와 고단한 어머니 걱정에 마음 졸이던 그 작은 소녀를, 이제는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다. 매일 아침 이 길을 걸으며 나는 과거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정성껏 살핀다. 45년 전 그 소녀가 그토록 바랐던 '어른의 평온'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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