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공포와 항공기 사고의 슬픔, 그 지옥 같은 연말을 지나며.
지난 연말,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 소식을 접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계엄이라는 폭탄이 떨어진 후부터 시작된 불면의 밤은, 처참한 사고 소식까지 더해지며 더욱 깊고 길어졌다. 한밤중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애써 억눌러두었던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충격을 깨워 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믿지 않는 사후세계나 영혼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작년 겨울, 나는 남편과 함께 이번 사고 항공기와 같은 기종을 타고 태국에 다녀왔다. 지방에서 출발하는 동남아 여행은 저가 항공기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승객들처럼 나 역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긴 시간을 견뎠다.
방콕에서는 값비싼 마사지를 받았고, 파타야에서는 요트 위에서 요염한 포즈로 사진도 남겼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파라다이스인가 싶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길이가 긴 남편은 폐쇄 공포증을 호소하며 좁은 좌석에 머리를 처박고 괴로워했다. 태국에서의 호사는 일시에 잊혔고, 나는 이번 여행이 비행기 안에서의 고통과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분들도 아마 내가 보았던 방콕 왓 프라깨우의 에메랄드 궁전을 보며 감탄했을 것이다.
차오프라야강 물보라에 얼굴을 적시고, 황금 절벽 사원의 거대한 부처님 앞에서 각자의 소원을 빌었을 게 분명하다.
달콤한 망고와 파인애플을 맛보고, 야자열매 그릇을 기념품으로 챙기며 귀국길에 올랐을 그들.
마치 내가 당할 일을 그들이 대신 겪은 듯한 착각에 가슴이 저리고 섬뜩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어제도 자다 말고 불현듯 잠에서 깨어 다시 신들에게 기도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이 부디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았기를 간곡히, 아주 간곡히 빌었다.
누군가 찍어 올린 무안공항 위 무지개 사진을 보았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떠오른 그 무지개를 따라, 그들이 무사히 평온한 곳으로 향했기를 바란다.
만물이 죽음을 거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듯, 그들이 아름다운 다음 생으로 건너갔으리라는 우주적 삶의 무한성을 믿고 싶다.
삶과 죽음이 순환하고 결국 하나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이치를 받아들이기에 나의 도(道)는 턱없이 부족하여, 나는 오늘도 그들을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