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옴 붙었다는 그 말

by 해림

“이건 건조증이 아니고 옴입니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요양원으로 입소하던 날, 담당 간호사의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요양원 입구에서 진행된 피부 검사에서 어머니의 몸 곳곳에 번진 붉은 반점과 손가락 사이의 물집이 드러났다.

피부과 전문의의 확진 결과, 요양원 입소는 거부되었고 어머니는 다시 요양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옮기려던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당시 어머니는 콧줄 식사만 하는 환자들 틈에서도 스스로 죽을 드시고 법문을 공부하실 정도로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셨다.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지는 요양원으로 모시면 기운을 완전히 차리실 거라 믿었던 터였다.


그런데 옴이라니. ‘재수 옴 붙었다’는 말이 이토록 비극적인 의미인 줄은 미처 몰랐다. 돌이켜보니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뒤부터 어머니는 가렵다며 밤잠을 설치셨다. 병원에서 요구하는 로션부터 값비싼 연고까지 대령했고, 개인 침구와 잠옷까지 새로 사 드렸다. 하지만 공동 세탁 시스템 안에서 개인 물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의료진의 태도였다. 동생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외래 진료를 다녀왔을 때도 의사는 그저 '노인성 건조증'이라 치부했다. 요양병원 원장도 억울하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요양원 간호사도 한눈에 알아보는 병을, 노인 환자를 수년간 봐왔다는 요양병원 의사가 몰랐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무능력이거나, 무책임이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옴 진드기는 밤마다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구순의 어머니는 지난 몇 개월간 그 지독한 가려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셨을까. 어머니가 가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병원에서는 심리적 요인이라며 딴청을 부리고 무시했다.


지금도 요양병원 어딘가에서 고통을 말하지 못한 채 밤새 몸을 긁고 있을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당장이라도 병원을 엎어놓고 싶었으나 분노를 억눌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급성 심부전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응급 처치를 해주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어머니를 살려준 곳이,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보다 더한 가려움의 지옥으로 어머니를 밀어 넣은 셈이다. 옴이 완치될 때까지 어머니는 그 병원에 더 머물기로 했다. 고비 때마다 어머니를 어루만져 주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이번 소동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밝혀주었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때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가 햇살 밝은 창가 침실에서 정갈한 밥을 드시고, 평생 하시던 불교 공부도 마음껏 하시며 평온하게 노후를 마감하시기를. 우리의 소박한 소망이 옴이라는 작은 벌레 따위에 무너지지 않기를 말이다.


[추신]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옴 완치 판정을 받고 요양원으로 옮기셨으나, 일주일도 안 되어 심부전이 재발했다. 다시 들어간 중환자실에서의 사투 끝에 투석 요양병원으로 옮기셨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돌아보면 어느 정도 회복 기미가 보인다고 해서 의료 시설이 부족한 요양원으로 옮기려 했던 나의 판단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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