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by 해림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집 근처 사찰에서 49재를 시작했다.


40년 동안 홀로 계셨던 고향 땅의 아버지를 어머니 옆으로 모시고, 두 분의 영구 위패를 그곳에 올렸다.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형제들은 이름난 대형 사찰에 제사를 모시기로 뜻을 모았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남편과 내가 습관처럼 산책하던 공원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고 유서 깊은 절. 어느 날 무심코 그곳을 돌고 나오던 남편이 "장모님 돌아가시면 여기에 모시면 참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규모는 작지만 정갈하고 기품 있는 사찰. 무엇보다 내가 매일 걷는 산책길 위에 있으니, 평생 곁을 지킨 것처럼 자주 문안 인사를 드릴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금상첨화였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올케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고모, 이 절을 어떻게 알았어요? 어머니가 예전에 마음 울적할 때면 늘 혼자 찾아가 부처님께 빌고 위로받으시던 곳이 바로 여기예요.“

전율이 돋았다.


나도 남편도 전혀 몰랐던 어머니의 비밀 기도가 서린 곳이라니.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안식처를 미리 점찍어 두신 듯, 내게 텔레파시를 보내 당신이 원하던 곳으로 우리를 이끄신 것이다.


어머니는 정말 '모든 계획'이 있으셨던 모양이다. 극심한 욕창과 신부전으로 호흡기에 의지하면서도 어머니는 끈질기게 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나는 한때 그 비참한 투병 과정을 보며 "평생 부처님께 의지하신 분의 최후가 왜 이리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며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당신이 설계한 '마지막 세팅'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최후의 고통을 인내하고 계셨던 거다.

주치의인 막내아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여러 번 사선을 넘어오셨고, 외동딸이 교장 연수를 마치고 무사히 취임하기를 기다려 주셨다. 바쁜 3월 신학기를 피해 잎새 푸르른 5월의 새벽을 골라 길을 떠나셨으며, 늘 분주한 딸을 배려해 일요일마다 재(齋)가 돌아오도록 날짜를 맞추셨다. 장례 후 연휴가 이어지게 하여 아버지의 이장과 봉안을 위한 시간까지 넉넉히 벌어주셨으니, 정말 무섭도록 대단한 어머니시다.


신기한 일은 또 있었다. 내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던 새벽 3시, 통신 불능 구역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이 떨어지고 있다는 요양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오빠와 동생에게 위급 상황을 알렸고, 그 직후 거짓말처럼 통신은 다시 끊겼다. 어머니가 당신의 임종 소식을 딸에게 꼭 전하고 싶으셔서, 그 찰나의 순간 통신망마저 뚫어버리신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 어머니는 청량한 풍경 소리와 낭랑한 불경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젊은 날, 예쁜 원피스에 선글라스를 쓰고 네 자녀의 손을 잡고 소풍을 오셨던 그 공원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희로애락으로 분주했던 찰나의 생을 뒤로하고, 어머니는 이제 우주의 한 점이 되어 영겁의 세월 속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내 몸에 새겨진 어머니의 유전자를 지표 삼아, 어머니가 두고 가신 세상 소식들을 하나씩 정성껏 전해드릴 생각이다.

이전 09화재수 옴 붙었다는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