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고무신과 마지막 목욕재계

by 해림

하얀 발 신고 가는 길

어머니의 49재 중 막재 날이다. 지난 7주 동안 나는 일주일마다 어머니를 모신 절을 찾았다. 이제는 대놓고 부를 일 없는 ‘엄마’라는 단어를 영정 앞에서 마음껏 소리 내어 불렀다.


“엄마, 잘 있었어요? 별일 없었지? 법문 많이 듣고 있어요?”


연이어 엄마를 불러놓고 영정을 한참 바라보다 나오곤 했던 시간도 이제 마지막이라 한다. 스님은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염불을 암송했다.


불심이라곤 없는 우리 형제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어머니만큼은 이 소리를 기쁘게 듣고 계실 터였다.


생전의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법회에 참석하셨고, 라디오 불교방송을 녹음해 듣고 또 들으며 유튜브 법문까지 섭렵하셨던 지독한 ‘불교 마니아’ 셨으니까.


나는 어머니가 종교에 집착하는 게 싫어 불교와는 거리를 두어왔지만, 결국 어머니가 점지하신 이 절 마당에 수시로 발을 들이게 될 운명인가 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위패를 이곳에 모셨으니, 이제 기제사며 명절이며 나는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막재 의식이 절정에 달했을 때, 보살 한 분이 하얀 고무신과 흰 천, 그리고 칫솔과 치약이 든 용 모양의 나무 상자를 내어왔다. 이승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목욕재계하고 새 신을 신으시는 의식이라 했다.


그 눈부시게 하얀 신발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는 평생 저렇게 깨끗하고 하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으셨다.


어머니의 신발은 늘 때가 덜 타는 어두운 색이었고, 낡고 더러워져도 그대로 신고 다니셨다. 새로 신발을 사드려도 신장에 고이 모셔두고는, “경로당 갈 때 잃어버린다”며 헌 신발만 고집하시던 분이셨다.


‘저렇게 하얀 신발을 신으라고 하면 엄마가 싫다고 하시면 어쩌나.’

엉뚱한 걱정을 하다가도, 극락은 하얀 신발을 신고 걸어도 흙탕물 하나 묻지 않는 곳이길 간절히 바랐다.


콧줄에 의지해 입안이 바짝 마른 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대령된 칫솔 세트도 내 마음을 할퀴었다.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못 드시고 가신 길에 칫솔질이라도 개운하게 하시라는 그 의식을 보며 나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어제까지 퍼붓던 장맛비가 씻은 듯이 그치고 햇살이 비치는 사찰 마당에서, 하얀 신발과 천이 소각로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니가 이렇게 날씨까지 좌지우지하시는 걸 보니 저승에서도 당신의 고집대로 잘 지내실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늘 새벽, 어머니는 가장 아끼던 막내며느리의 꿈에 나타나 “오늘 너희 집에 밥 먹으러 가도 되냐”라고 선명하게 물으셨단다.


기력이 다한 마지막 순간에도 날씨 세팅을 잊지 않으시더니, 막재 날에 맞춰 밥 한 끼 드시러 오겠다고 통보하신 모양이다.


평소에도 의지가 소 힘줄 같았던 나의 어머니. 당신은 아마 저세상에서도 우리 형제들의 정신을 지탱하며 오래도록 그 단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실 게 분명하다.


엄마, 이제 그 하얀 신발 신고 좋은 곳으로만 가요. 흙 묻을 걱정 없는 그곳에서, 아버지랑 맛있는 밥 챙겨 드시며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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