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보여주지 못한 영도다리 도개

by 해림

“오늘은 차를 두고 영도다리에 가요. 도개 하는 것도 보고, 어머니 요양병원 면회도 갑시다.”

남편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며칠 전 새로 산 네이비색 점퍼를 산뜻하게 챙겨 입었다. 영도다리 도개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된다기에,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집을 나섰다.


내게 영도는 어머니의 지독한 가난이 서린 섬이다. 외할아버지가 고단한 삶을 피해 정착하신 그곳에서 어머니는 굶주림을 밥 먹듯 했고, 어린 여동생 둘을 등에 업은 채 허망하게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물이 귀해 산꼭대기를 오가던 척박한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와 삼촌들은 악착같이 버텨내며 공부했다. 당시 섬과 육지를 이어주던 유일한 생명선이 바로 영도다리였다.


이 다리는 남편에게도 잊지 못할 ‘결정적 순간’의 장소다. 일곱 살 소년이었던 남편은 할머니 손을 잡고 영도다리를 보러 남포동에 왔었다.


육중한 다리가 허리를 들어 올리는 진귀한 구경을 손주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할머니의 야심 찬 나들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다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주변 상인에게 물어 돌아온 대답은 허망했다. “어제까지만 올렸고, 오늘부터는 안 합니다.”


1966년 9월 1일. 상수도관 확장을 위해 도개가 영구 중단된 바로 그날, 남편과 할머니는 간발의 차이로 역사의 뒤편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글도 모르시던 시골 할머니가 쪽진 머리에 한복을 차려입고 손주 손을 꼭 쥔 채 부산의 명물을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물으셨을까. 단 하루 차이로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지 못한 할머니의 속상함은 또 얼마나 컸을까.


할머니는 이내 한복 치마 한쪽을 추켜올리고 2대 독자 손주의 손을 다시 고쳐 잡으셨을 것이다. 실망한 기색을 감추려 애써 활짝 웃으며 발길을 돌리던 두 사람의 실루엣이 오늘 다리 위 인파 속에서 어른거리는 듯했다.


오후 2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량이 멈추고 다리가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도개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남편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60년 전, 할머니가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그 광경이 이제야 소년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갈매기 떼 날고 동백꽃도 피는 곳’을 흥얼거리며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을 걸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으신 시할머니도 오늘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할머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남편의 동그랗고 진지한 눈동자 속에 할머니는 여전히 살아 계신다.


다리가 서서히 내려앉는 것을 보며, 할머니는 환갑이 넘은 손자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야야, 저것 봐라. 아이고, 참말로 신기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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