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선물한 생일상, 대물림되는 엄마의 기도
올해의 폭염은 그야말로 '갑(甲) 중의 갑'이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이 무시무시한 열기 속에 남편의 생일이자 말복이 찾아왔다. 2대 독자 외아들을 삼복더위에 낳아 기르신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나 역시 36년째 8월의 뜨거운 불 앞에서 남편의 생일상을 차리고 있다.
문득 1994년의 여름이 떠오른다. 역대급 폭염의 기록을 세웠던 그해 8월 중순, 나는 둘째 딸을 낳았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는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려오는 듯하다. 그런 둘째가 어느덧 자라 가정을 꾸리고, 이제는 임신한 몸이 되어 생일을 맞으러 친정집에 왔다. 입덧으로 고생하던 딸아이에게 좋아하는 요리 한 번 해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번에는 남편과 딸의 생일상을 함께 정성껏 차려내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 전부터 재래시장을 들락거리며 식재료를 날랐다. 한우 갈비 핏물을 빼고, 배와 양파를 갈아 넣은 양념에 하룻밤을 재웠다. 당근과 무를 둥글게 돌려 깎으며 아이의 모난 마음도 둥글게 깎이길 기도했다. 생일날 아침, 찰밥과 미역국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웠다. 곁들인 파김치와 오이소박이까지, 8명의 식구가 둘러앉아 '살살 녹는다'는 찬사를 연발하며 그 푸짐한 성찬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오래도록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 보니,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형제들의 생일날이면 어머니는 꼭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고 정갈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촛불을 밝힌 케이크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식들을 위해 아주 오래도록 빌어주시던 분.
어린 우리는 하얀 크림 위의 분홍 꽃 장식이 녹아내릴까 봐, 엄마의 기도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엄마는 대체 뭘 저렇게 오래 빌고 있을까?" 싶어 야속하기도 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네 남매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미역국 한 사발, 팥 찰밥 고봉으로 담아 올리며 손이 닳도록 빌던 그 기도는 자식들의 삶에 거름이 되었음을.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생일은 내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나를 낳아준 어머니께 감사드리는 날이라는 것을. 여름 내내 식구들 생일상을 차리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보면 "내 생일엔 미역국을 굶겠다"며 소심한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생일밥도 안 해 먹나?"라며 짐짓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던지시곤 했다. 그 잔소리는 자식이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길 바라는 어머니만의 사랑법이었다.
이제는 촛불 앞에 빌어주시던 어머니도, 생일밥 챙기라 잔소리하시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내가 그 자리에 서서 출가한 자식들이 미역국은 먹었는지 은근히 걱정하는 엄마가 되었다.
오늘은 둘째 딸의 진짜 생일날이다. "너무 더운 날 태어났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참 시원하구나. 점심엔 꼭 국수 챙겨 먹어라." 짧은 카톡을 보내며, 30여 년 전 그 무더웠던 밤 나의 산통을 곁에서 함께 견뎌주신 어머니께 사무치는 감사를 전한다.
딸을 낳고 실망했을지도 모를 2대 독자 집안의 며느리를 위해, 무릎이 닳도록 108배를 하며 손녀를 축복해 주신 할머니. 그 기도를 먹고 자란 둘째는 어느덧 대한민국의 검사가 되었고, 이제 또 다른 생명을 품은 엄마가 되어 내 곁에 앉아 있다.
사랑은 이렇게 뜨거운 여름날의 생일상처럼, 대물림되는 온기로 이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