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담장 아래서 맞이한 생일

by 해림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하지만 예년의 생일과는 공기부터 다르다. 지난 4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처음으로 홀로 맞이하는 생일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팔순을 넘긴 나태주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가 사라지면 담장이 무너져요. 낡은 담장이라도 바람을 막아주거든요. 부모가 오래 살도록 살피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담장이 무너진 허허벌판에 홀로 선 느낌을 오늘에야 뼈아프게 실감한다.


병원에서 촛불 같은 목숨을 이어가시던 어머니의 불꽃이 점멸하고 나니, 넋두리할 대상도 짜증 부릴 상대도 없는 '천애 고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어머니의 부재는 다음이 내 차례임을 의미한다. 번호표를 쥐고 제일 앞줄에 서 있는 듯한 서늘한 두려움이 가끔 등줄기를 타고 밀려온다.


구순의 연세에도 어머니는 늘 내 생일 밥을 확인하셨다. "생일상이 뭐가 대수냐"며 나는 자식들과 얄궂은 외식을 즐기느라 미역국과 찰밥을 건너뛰곤 했다. 최근에는 말씀 한마디조차 힘겨워하시면서도 내 생일 타령을 하시는 어머니가 가끔은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자식 생일쯤은 잊으셔도 될 연세인데, 그 총명함이 도리어 애틋하고도 두려웠던 까닭이다.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냇가에 무덤을 만든 청개구리처럼, 나는 이제야 어머니 말씀대로 꼭 생일상을 차려 먹기로 마음먹었다. 내 손으로 끓이는 건 어쩐지 처량해 남편에게 미역국을 신신당부했으나 하필 지방 출장이 잡혔다. 멀리서 축하금과 미안함을 전해왔지만, 결국 나는 직접 국을 끓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마음 쓰여 할 남편을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냉동실 양지머리와 기장 미역을 달달 볶아 진국을 내고, 봄에 걸러둔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홀로 앉은 식탁에서 찰밥과 미역국을 우걱우걱 먹어 치웠다. 평소 아침이면 과일이나 빵 한 조각이 전부였던 위장을 팽팽하게 늘려가며 과한 식사를 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혼자 마주 앉은 생일상이 주는 처량함을 떨쳐내고, 잘 먹고 행복한 듯 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자축이었으리라.


저녁에는 큰딸과 사위가 케이크를 준비해 나를 불렀다. 그런데 딸네 집으로 향하는 길,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큰딸의 생일 축하 바이올린 연주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 손녀의 일곱 발 걷기에 물개박수를 치면서도 눈가엔 자꾸 습기가 찼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없는데 나는 생일이라고 자식들 재롱을 감상하고 있으니 천하의 불효자가 된 듯이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어머니는 매년 내 생일에 봉투 속에 오만원권 한 장과 직접 그리신 문인화 한 점을 같이 넣어주셨다. 갈수록 기력이 떨어져 붓질은 투박해졌지만, 이제는 그 그림조차 받을 수 없다.


"올해는 네 환갑이니 엄마 돈으로 금목걸이 하나 해라.“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는 고통 중에도 외동딸의 환갑을 걱정하시던 목소리. 이 판국에 환갑이 무슨 대수냐며 건성으로 흘려버린 말이 이제야 사무치는 후회로 남는다.


아무리 장수 시대라 해도 환갑 넘긴 나이에 부모가 안 계신 건 흔한 일인데, 앞으로는 자식들 앞에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훔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대신 내년 생일에는 어머니 말씀대로 아주 굵직한 '양아치 금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추모 공원에 갈 생각이다. 그 화려한 목걸이를 보여드리며 활짝 웃어 보일 것이다.

"엄마, 나 미역국 끓여 먹고 왔어요. 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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