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 오셨네요.”
일요일 낮, 요양병원 면회실에 들어서니 간호사가 평소보다 반갑게, 어쩌면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맞이한다.
“어떡하죠? 어젯밤에 어머니가 콧줄이며 링거, 투석용 카테터까지 죄다 뽑아버리셨어요.”
밤사이 결박 띠가 느슨해진 틈을 타, 기어코 손을 빼내 몸에 연결된 모든 줄을 뜯어내셨단다. 항의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투석을 계속하려면 재시술이 필요하니 내일 보호자가 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침상에 누운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눈을 자주 뜨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무표정 속에서도 수많은 생각이 일렁이는 듯한 눈빛.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때면 두 손을 휘둘러 간병인을 밀쳐내기도 하셨지만, 뼈만 남은 몸으로 이 모든 줄을 스스로 뜯어내셨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엄마, 이걸 왜 다 뺐어? 이러면 다시 아프게 수술해야 한단 말이야.” 몇 번을 물어도 묵묵부답이던 어머니가 마침내 한마디를 뱉으셨다.
“가려워서.”
어머니는 옴의 후유증과 투석 환자 특유의 소양증이 더해져 지독한 가려움에 시달리고 계셨다. 얼마나 가려우셨으면 주무시는 중에도 손톱을 세워 시트를 싹싹 긁어대셨을까. 정작 어디가 가려운지도 모른 채, 그저 본능적으로 허공을 긁으며 고통을 호소하신다.
다시 “엄마”라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으셨다. 왜 말을 안 하느냐고 채근하자, 어머니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또렷하게 되물으셨다.
“무슨 말.”
며칠 전 면회를 왔던 올케에게는 “배가 고프다”는 말씀도 하셨단다. 평소 식탐이라 느껴질 정도로 음식에 집착하셨던 분인데, 오랜 시간 콧줄로 유동식만 넘기셨으니 그 허기가 얼마나 사무치셨을까. 콧줄 대신 미음이라도 드시게 해 달라고 하니, 폐렴 위험 때문에 안 된다며 간호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아침, 주치의는 검사 결과 수치가 괜찮으면 투석용 카테터를 다시 끼우지 말자고 제안했다. 어쩐지 내 귀에는 새로 시술해 봐야 이제는 의미가 없다는 선고처럼 들렸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 평생을 악착같이 살아오셨으니 세상이 줄 수 있는 치료를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믿었다. 동시에 그 끝은 평온한 죽음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의사 아들을 둘이나 둔 덕에 네 번이나 중환자실 문턱을 넘나들며 살아 돌아오셨지만, 소생하실 때마다 생의 곡선은 가파르게 꺾였다. '의사 자식 두면 죽기도 쉽지 않다'는 세간의 말이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 씁쓸해졌다.
주치의인 남동생은 대학병원에서도 구하기 힘든 항생제와 수혈을 동원해 파리한 목숨을 이어 붙여서 결국 이곳까지 어머니를 모셔 왔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런데 한 달 넘게 몽롱하시던 분이 갑자기 힘을 내어 온갖 줄을 뜯어내고 “배고프다” 말씀하신다. 투석을 멈춰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나의 심경은 안도감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무게로 가라앉는다.
의식이 또렷해진다는 것은, 온종일 가려움과 배고픔이라는 원초적인 고통을 더 생생하게 견뎌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석의 고통을 덜더라도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욕창의 고통은 여전한데, 이 ‘고통 덩어리인 산목숨’이 죽음보다 진정 나은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배고프다.”
어머니의 그 외마디가 가슴에 박혀, 오늘 내 목구멍으로 넘기는 음식들은 유독 껄끄럽고 불편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