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마디에 새겨진 출산의 기억

by 해림

오늘은 큰딸의 생일이다. 1990년 7월, 내가 첫딸을 자연분만으로 세상에 내놓은 날이기도 하다.


당시 3.95kg의 우량아였던 딸을 보며 요즘 의사들이라면 제왕절개를 권했겠지만, 그 시절은 자연분만이 당연한 순리였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생생한 산고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자연분만의 고통 속에서 엄마가 되었다.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된 큰딸은 두 아이를 모두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작은딸 역시 최근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작년 기준 제왕절개 비율이 60%를 훌쩍 넘겼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싶다. 하지만 자연분만한 지 한 세대도 더 지난 내 몸의 시계는 여전히 1990년 그날에 멈춰 있는 모양이다.


육십을 넘긴 나이임에도 매년 7월이 되면 출산의 고통이 어김없이 환지통처럼 찾아온다. 첫째는 7월 초에, 둘째는 8월 중순에 낳았으니 한여름에 겪은 두 번의 출산은 내 몸에 지독한 산후풍을 남겼다.

자식 넷을 낳으셨던 친정어머니는 한여름에도 선풍기 바람 한번 쐬지 못하셨고, 차가운 수박조차 전자레인지에 데워 드시곤 했다. 그때는 "뭘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실까" 싶었는데, 이제야 어머니의 그 고단한 관절을 이해한다. 7월만 다가오면 뼈마디가 아리고 붓는다. 자고 일어나도 회복되지 않는 눅눅하고 무거운 몸. 여자의 몸은 왜 출산의 기억을 이토록 잔인할 만큼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이 시기가 되면 나는 학교에서도 조금 특이한 교장이 된다.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시원한 필로티 주차장 대신, 뙤약볕이 내리쬐는 건물 뒤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사실 나는 달궈진 차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그리 싫지 않다.


온종일 에어컨 밑에 있다가 쩔쩔 끓는 차 안에 들어가면, 마치 한증막에 들어온 듯 시린 뼈마디가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덥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선생님들께 그저 조용한 미소로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이 시원한 자리에 주차하세요"라고 화답할 뿐이다.


칠월의 열기가 쨍쨍한 지난 일요일, 나는 집 근처 유서 깊은 온천을 찾았다. 다친 노루도 완쾌했다는 전설을 가진 그곳은 겨울보다 여름에 즐기는 것이 제맛이다. 두 시간 동안 열탕과 노천탕을 오가며 산후풍으로 엉클어진 늙은 몸을 달래주었다. 뜨거운 물에 관절염이 푹 익어버렸는지, 온천을 마친 뒤에는 통증도 가시고 피부도 빤질거리는 게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문제는 집에 돌아온 뒤 마주하는 '복병'이다. 나보다 체온이 2도는 높은 듯한 남편은 여름 더위를 단 1초도 참지 못한다. 샤워를 마치자마자 에어컨을 19도에 맞추고 선풍기까지 쌩쌩 돌리는 남편 옆에서, 나는 겨울 카디건을 걸치고 몸을 웅크린다. '당신이 아이를 단 한 명이라도 직접 낳아봤다면 나를 이해할 텐데.‘

과학이 이토록 발달했다는데 남자가 출산하는 파격적인 기술은 왜 개발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남자들이 기를 쓰고 그 기술 개발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딸의 생일을 축하하면서도 내 뼈마디의 안부를 먼저 물어야 하는 잔인한 7월. 엄마라는 이름의 훈장은 여전히 뜨겁고도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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