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
"뭐든지 내다 버리고 싶다. 놔두면 뭐 하나, 아무 의미 없는데."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신 뒤 집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부터 나에게는 기묘한 버릇이 생겼다. 수시로 옷장과 서랍, 싱크대를 뒤지며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을 과감하게 솎아내는 것이다. 오늘은 지하 창고에 보관 중이던 빤질빤질한 제기 세트 두 박스마저 미련 없이 처분했다.
나의 이 지독한 '버리는 병'은 사실 친정어머니 덕분(?)에 생겼다. 어머니는 내가 보기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절대 버리지 못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커서 어머니 몰래 살림을 버리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천하의 나쁜 딸'이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너는 버리는 병이 있냐"며 노심초사하셨고, 나는 저승의 처벌이 두려워 상한 음식조차 못 버리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나의 버리기 전투 자세는 더욱 강력해졌다. 이번 3일 연휴, 넘쳐나는 시간 속에 마침내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대형 박스 두 개를 끄집어냈다.
두 딸의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의 흔적이 가득했다. 상자를 열며 깨달았다. 나는 딸들이 학교를 졸업한 게 엊그제인 양 시간의 흐름을 망각한 채 그때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음을.
"필요했다면 진작 가져갔겠지."
단단히 결심한 나는 딸들에게 묻지도 않고 물건들을 종량제 봉투에 쏟아부었다. 초중고 앨범, 상장, 그림일기, 대학 시절 기념품, 심지어 전 남자 친구의 사진까지…. 지금까지 이것들을 금덩어리인 양 짊어지고 살아온 세월이 억울할 정도였다.
딸들에게 "초등학교 때 일기는 어떡할까?"라고 카톡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판단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빛바랜 일기장을 몇 권 읽어보니 잊고 지냈던 우리 가족의 이벤트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 집을 정리할 때 발견했던 우리 형제들의 낡은 성적표처럼, 너무 오래 묵어 슬픈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앨범과 일기장 몇 권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화끈하게 처리했다.
그러던 중, 큰딸이 고등학생 때 작성한 수행평가 보고서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엄마의 미소'. 표지에는 나의 신혼여행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남편과 함께 "이런 게 아직 남아 있었네"라며 신기해하며 넘겨본 그 기록 속에는 나의 일대기가 담겨 있었다. 큰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났다. 호기심에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남편이 조용히 그 뒷부분을 건네받아 읽었다.
눈물이 솟구친 이유는 글이 감명 깊어서만이 아니었다. 그 기록 속의 나는 너무도 힘들고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힘에 부쳐 온몸의 신경줄이 끊어질 듯했지만, 아이들 앞이라 억지로 웃고 있었던 그때의 내가 보였다.
두 아이가 사춘기를 앓을 때, 나는 남보다 이른 40대 중반에 폐경과 심각한 갱년기를 겪고 있었다. 감정 조절은 힘들었고 몸은 아팠다. 고집 센 큰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죽을 만큼 애쓰던 시절이었다. 나는 늘 그때를 생각하면 다정하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윽박질렀던 악몽만 떠올라 가슴을 치며 후회하곤 했다.
그런데 큰딸은 기록해 두었다. 엄마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고, 가정과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고. 수행평가라 다소 긍정적으로 미화되었을지라도, 사춘기의 아이가 속으로는 엄마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오늘 이 20년 전의 기록을 통해 나는 비로소 위로받는다. 엄마로서 완벽할 수 없었음에 대해 이제는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겠다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 한 몸 바쳐 최선을 다했던 나 자신을 이제는 토닥여줘야겠다고 말이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놓고도 뒤늦게 시행착오를 발견하면 그 노력조차 후회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그러지 말걸, 가만히 둘걸, 다그치지 말걸" 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 먹기도 했다. 어제부터 입가에 맴돌던 노래 가사가 다시금 울려 퍼진다.
“그대여, 이제 걱정하지 말아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그렇다. 지나간 것들이 후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을힘을 다해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미친 듯이 물건을 버리던 손길이 오늘 잠시 멈췄다. 20년이 넘은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보듬어온 보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 딸들의 일기장은 당분간 내가 더 간직해 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훗날 심심할 때 다시 읽어보면, 또 어떤 위로가 선물처럼 짠하고 나타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