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산책을 재촉했다. 기후 위기 탓인지, 이렇게 덥지 않은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드는 요즘이다. 남편이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성미 급한 나는 이미 현관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우리는 집 앞 하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보낸 이곳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당시 하천은 전혀 정비되지 않아 비만 오면 온 길에 황토물이 넘쳤다.
학교에 가려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헤치고 젖은 생쥐 꼴이 되어야 했다. 통신이 원활치 않던 시절이라 폭우를 뚫고 겨우 학교에 도착해서야 "오늘은 휴교니 돌아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허무하게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맑은 물이 흐르고 수많은 민물고기가 노니는 생태 하천이 되었다. 생활 오수관을 따로 묻고 하천둑을 매끈하게 정리 한 덕분이다.
목이 긴 왜가리가 한쪽 다리로 균형을 잡으며 먹잇감을 찾는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오늘은 바위 위에서 느긋하게 일광욕 중인 자라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일까, 아니면 누군가 방생한 것일까.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녀석의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문득 30여 년 전, 영어 교사 연수로 처음 미국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거구의 미국인 교수가 인상적인 게 무엇이냐 물었을 때, 좁은 분단국가에서 온 나는 단번에 대답했다.
"모든 것이 거대합니다(Everything is gigantic)!" 광활한 대지와 풍요로운 자연, 잘 가꾸어진 시설, 그 속에 깃든 여유가 부러워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좁은 우리 땅 어디를 가도 하천이 잘 정비되어 있고, 이름 모를 물고기와 새들이 평화롭게 노닌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아무도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대하지는 않지만, 이 작은 땅에서 지혜를 모아 일구어낸 이 풍경이 이제는 미국의 광활함보다 더 귀하게 느껴진다.
17년 전, 영어 교사 파견 프로그램으로 다시 미국에 가서 6개월 체류했던 적이 있다. 이후 귀국해서 교지에 기고했던 글을 찾아보았다.
"나는 올랜도 마거렛로드의 작은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다. 베란다까지 가지를 뻗은 상수리나무 열매를 먹으러 다람쥐 가족이 매일 찾아온다. 월마트에서 땅콩 한 봉지를 사서 그놈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더니, 녀석들은 내가 올 시간이면 기다렸다가 땅콩을 달라는 소리를 낸다. 새까만 눈을 힐끔거리며 땅콩을 먹는 다람쥐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이곳 올랜도는 산 대신 호수가 천지다. 웅덩이 같은 작은 호수에서 커다란 거북이를 보았다. 숭어 떼가 줄을 짓고 기괴하게 생긴 새들이 쥐라기 공원의 한 장면처럼 노닌다.
미국의 거대한 땅과 그 속에서 당당히 제 자리를 차지한 동물들을 보며 은근한 질투심이 생겼다. '공해 없는 하천의 거북이와 숭어들이 한국에선 며칠이나 버틸까? 벌써 보양식으로 사라지지 않았을까?' 미국인들이 누리는 광활한 자연과 그들의 여유가 부러우면서도, 너무 넓은 땅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보여 조금은 외로워 보였다."
17년 전의 나는 한국의 맑은 하천의 생명들이 보양식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집 앞 하천의 자라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평화롭게 볕을 쬐고 있었다.
땅이 좁으면 어떤가. 우리는 그 좁은 길을 따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크고 작은 호수와 둘레도 재기 어려운 키 큰 나무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다만 우리 곁의 이 작고 소중한 하천이,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생명들이 오래도록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외로울 틈 없는 이 좁고 복작거리는 땅이, 나는 이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