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진실, 가장 뜨거운 고마움

by 해림

“교감 선생님, 이것 좀 드셔보십시오.” 최 선생님이 튀기지 않은 쌀과자라며 내 책상 위에 커다란 봉지를 슬그머니 놓아두고 갔다. 며칠 전 내가 건넨 조언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준 것 같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작년에 부임한 최 선생님은 미모와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하지만 후각이 예민한 내게는 한 가지 견디기 힘든 고충이 있었다.


향수는 아닌 듯한데, 근처에만 오면 풍기는 정체불명의 불쾌한 취기(臭氣)였다. 혹여 의학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체취일까 싶어 입을 닫은 채 관찰하기를 1년. 마침내 원인이 헤어 관리에 있음을 알아내고 며칠 전 큰맘 먹고 말을 꺼냈다.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거친 머릿결이 콤플렉스라 10년 넘게 매일 밤 달맞이꽃 종자유를 머리에 듬뿍 바르고 헤어캡을 쓴 채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침에 샴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출근했다니, 10년 동안 그 오일이 밤새 산패하며 머리 냄새와 결합해 내뿜었을 고약한 냄새를 주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천연 염색 미용실을 소개해주고 가벼운 에센스로 관리해보길 권했다.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과자 봉지까지 받았으니 나의 진심이 무사히 전달된 셈이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 '팩트'를 대면하는 일은 훨씬 가혹했다. 노환으로 하루하루 위태로운 어머니는 당신의 기력을 돌보지 않으신 채, 무거운 보행기에 의지해 지하철을 타고 화실 이곳저곳을 전전하셨다.


그림을 향한 그 지독한 열정은 인정하지만, 매일의 고된 외출이 구순의 육신에 이로울 리 없었다. 어머니의 걸음이나 숨소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차라리 또래 노인들이 계신 요양원에 입소하시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리라 판단했다. 무작정 등을 떠미는 뜻이 아니었다. 갈수록 외출은 버거워지고, 바쁜 나나 요양보호사의 간헐적인 돌봄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사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미리 '체험'이라도 해보시는 게 어떻겠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절박한 제안이었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는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구순 생신을 보내고 다시 입원하신 어머니께 부정맥 진단이 내려지자, 의사 동생은 날 선 눈초리를 보냈다. 내가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 심장병이 도졌다는 투였다.


구십 년을 사용한 심장이라면 고장이 날 때도 되지 않았나. 지척에서 어머니의 비서 노릇을 하며 거취를 고민해온 시간은 오직 나의 몫이었다. 대책 없이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를 보며 차라리 보행기를 사드리지 말걸 하는 후회까지 밀려왔다.


어머니의 연세를 고려할 때 이제는 안전하고 적적하지 않은 환경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 명의 아들을 제치고 내가 그 '총대'를 멘 대가는 혹독했다. 평판 좋기로 소문난 요양원을 샅샅이 훑어보고 가장 믿음직한 곳에 어머니의 이름을 대기로 걸어두었으나,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어머니는 배신감 섞인 거부감을 드러내셨고, 형제들 역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어머니를 직접 모시겠다거나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는 법도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 오로지 나 혼자 죄책감의 굴레를 뒤집어써야 하는 이 '딸'의 자리가, 나는 사무치게 서글프고 야속했다.


진실(Fact)을 말한 자로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면, 설령 그것이 당장은 최선이 아닌 듯 보일지라도 말이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문제를 내 입으로 꺼내어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은 괴롭다. 하지만 그 아픈 진실이 결국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는다.


훗날 돌아보았을 때, 누군가 용기 내어 뱉은 그 차가운 팩트가 실은 가장 뜨거운 고마움이었음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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