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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Mar 14. 2022

시간

22.03.14

 32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의 놀라운 성장에 대한 기쁨과 같이 불만도 32개월치 쌓여 있다. 불만의 정체는 여러 요인을 가지고 있어 진짜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꽤 힘들었다.  책에서 봤던, 상상했던 육아는 단순했다. 먹이고, 재우고, 같이 놀아주고. 그 속에 숨은 시간은 계산하지 않았다. 내 불만의 높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이다.  


 1. 아이가 태어나고, 모유수유를 했다. 1시간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아이를 내려놓는다. 30분 정도 쉬었을까?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랜다. 다시 수유를 한다. 수유 텀이란 게 있는 건지 쉴틈이 없었다. 아이에는 낮과 밤 구분 없이 먹고, 울었다. 24시간 아이에게 맞춰지는 시계는 나를 지치게 했다.


2. 아이는 90일부터 통잠을 잤다. 8시부터 쭉 자는 덕분에 넷플릭스도 보고, 신랑과 놀기도 했다. 문제는 내 몸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수유 텀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주변에 모유 수유한 친구도 많이 없는 데다 보통은 ‘안 먹이면 줄더라’고 말해줬는데 나는 정반대의 케이스였다. 90일 동안 수유를 한 것도 모유를 먹여야겠단 의지 때문이 아니라 유축기로 빠지지 않는 유선 때문이었다. 밤새 돌덩이처럼 굳어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타이레놀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통증으로 인해 아이가 잠들어 있는 편한 시간을 통증을 이기는 데 썼다. 


3. 아이가 컸다는 지표 중 하나는 줄어드는 낮잠이다. 언제 아이의 낮잠을 재워야 하는지 과도기마다 바뀌었다. 낮잠 잘 때 쉬고 싶은데, 그 시간이 언제, 얼마나 찾아오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낮잠을 1번만 자는 시기가 오히려 가장 편했다. 언제 자야 하는지 알았으니까. 요즘은 낮잠을 아예 안 자려고 하는 과도기다. 잠을 이기지 못하면서 깨어있으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쉬는 시간을 벌고 싶어 아이를 재우려고 한다. 


 4. 먹이는 일에도 숨은 시간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 속에 메뉴를 선택하고, 장을 보고, 조리하는 시간이 있다.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기 전까지 한 번에 두 끼 메뉴를 준비해야 했다. 차려진 음식을 크게 입 벌려 먹어준다면 좋겠지만 안 먹는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탓에 아래로 옆으로 흘리는 음식을 치우는 일도 추가된다. 요즘은 한 입 먹고 내려가서 놀고, 한 입 먹고 내려가서 책을 본다. 입 속으로 음식이 들어가고 씹는 시간 외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5. 놀아주는 일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최근까지 아이는 혼자서 잘 노는 편이었다. 혼잣말을 해가며 역할놀이도 하고 책도 보고 했다. 요즘에는 내가 만든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수시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옛날 옛날에~이야기해주세요.”, “구멍 이야기해주세요.” 라 한다. 밤잠 재울 때 늘 이야기를 들려 달라해서 이제는 어둠 속에서도 쉬지 못하고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도 낮잠을 안  자겠다 버티는 아이 때문에 화를 낸 적이 많다. 낮잠 안 자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생각해보면 내 시간이 없어졌다는 이유가 컸다. 낮잠을 안 잔다고 혼날 일은 아닌데 아이를 많이 혼냈다 싶어 자책하기도 했다. 어제는 너무 졸려하는 아이와 씨름하기 싫어 차에서 재웠다. 아이가 일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저희는 아이를 이렇게 키웁니다>를 읽었다.


“아이들의 정신적 기반을 다져준 것은 가정이 유복한 지 가난한지 여부가 아니라, 부모가 나누어 준 시간의 절대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저희는 아이를 이렇게 키웁니다> 미야모토 에리코 


 책 속의 문장을 읽는데,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아이에게 내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훌륭한 메시지이지만 나는 답답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내 시간을 아이와 나눠 써야 한다는 것이 나를 묶고 있었구나. 남편은 이 시간을 함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알 리가 없다.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해봤자 “힘들었지, 힘들겠다.”만 되돌아오는 게 당연했다. 각자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주양육자만이 알 수 있는 마음이다. 내 삶을 돌볼 시간에 제약이 생겼다는 것은 육아를 전담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다. 나에게 육아는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아주 힘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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