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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Mar 10. 2022

기다림으로 자라는.

22.03.10

 분명히 밑줄도 그었고, 잊지 말아야지! 다짐도 여러 번 했는데 실전에서 우리 집 어린이를 대하는 순간에 마음 먹었던 태도를 까먹는 날들이 잦다. 아이를 재워놓고 벽을 사이로 한 뼘 거리가 생기면 그제야 미안한 마음을 앞세워 반성을 한다. 자꾸만 잊는 일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이다. 아이가 5개월일 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어린이라는 세계>를 들고나가 커피숍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현성이의 말을 읽으며 “나는 꼭 기다려주는 엄마가 돼야지.”를 되뇌었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펼쳐보니 그때의 다짐을 담은 밑줄이 꾹꾹 눌러져 있다. 2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밑줄을 잊어버리고 31개월이 된 아이와 매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인생 3~4년 차에 접어든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지안이가 할래요.”이다. 요즘은 한 문장으로 말하는 시간도 아까운지 “내가!”를 외친다. 요즘 아이가 꽂힌 스스로 목록은 양치하기다. 아이는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 그걸 기다려주자니 나는 조급해진다. 잘 닦여줘야 충치가 안 생길 것이고 얼른 닦아야 재울 수 있다. 아이를 기다려줄 수 없는 양치하기는 늘 울음바다로 끝이 난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다시 펼친 건 어린이에 대한 다짐을 따뜻하게 데워준  조우리 작가의 <이어달리기> 연작 소설 중 한 편을 읽고 나서다. 수록된 작품 중 <<둘둘셋>>은 ‘어린 시절에 만난 어떤 어른이 보여준 태도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인공 지애를 통해 알려주는 단편 소설이다. 지애가 어린 시절 받은 존중의 느낌을 서술한 문장에 나는 밑줄을 긋는다. 


하지만 정답을 선뜻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했다. 그러면 질문을 한 어른은 기특하다는 듯이, 다정함이 담긴 눈빛으로 지애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에만 가끔씩, 지애는 어른에게서 한 사람의 몫의 존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이어달리기> 조우리


 두 권의 책을 이어준 단어는 ‘기다림’이다. 어린이를 대할 때 어른들이 가장 하기 힘든 일 중 하나가 기다려주기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고 어린이들의 조금 더 걸리는 시간을 참아주지 못한다. 아이들을 존중해주는 건 다른 어떤 말보다 침묵하고 낮은 자세로 아이와 눈을 맞추며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일이 오면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시간을 조금 기다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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