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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Apr 13. 2022

무용함의 쓸모를 남긴 공부

22.04.13

인생의 지표가 되는 수업이 있다. ‘독일 명작의 이해’가 그랬다.
           <공부의 위로> 곽아람


 곽아람 기자가 대학 다닐 때 들었던 교양수업을 이야기를 담은 <공부의 위로>를 읽으며 나의 대학시절 기억을 되살려본다. 대학때 들은 교양수업과 수업에서 읽은 책 한 권으로 기억의 서랍이 열린다.

 

 ‘프랑스 문학의 이해’는 1년을 다니고 자퇴한 대학교에서 들은 교양수업이다.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때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 걸까? 책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 한 권이 이유를 말해준다. 20대 내내 따라다닌 책이다. 수업은 책과 영화를 넘나들며 프랑스 예술의 세계를 공부했다. 커리큘럼과 수업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지만 수업 과제로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0대 내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수업 때 읽은 이후로 5번은 더 읽었던 것 같다. 분명 좋아한 책은 한 권인데 책 속의 책이 이어져 테레자가 프란츠를 찾아왔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고 밀란 쿤데라의 다른 작품들을 읽었다. 영혼 회귀 사상을 언급하는 책이 나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첫 장을 또 펼쳐 읽었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해가 될 것 같은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느껴지는 게 좋았다. 반대로 다른 책을 읽을 때나 드라마, 영화를 볼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종종 등장하면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책인 마냥 반가워했다. 영혼 회귀 사상이 언급된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고 또 읽었으며, 최근에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주인공들이 책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와 혼자 방방 뛰었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만난 책 한 권으로 책과 책이 이어지는 경험을 충만하게 했던 것 같다. 책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한 건 교양수업에서 만난 책 한 권 덕분이다. 책 안의 내용을 주제로 레포트를 썼고 교수님의 설명을 받아 적었다. 다음 차시 수업에 책을 영화화 한 <프라하의 봄>을 봤다. 책만 읽었더라면 놓치고 갔을 이야기들을 수업을 들으며 붙잡아 둔 것이 있었으리라. 책과 책이 이어지고 다른 장르까지 뻗어지는 재미를 한번 알고 나니 독서로 인한 경험이 확장되는 체험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즐거운 체험은 아직도 나를 책 안에서 살게 하고 있다.


재수 후 다른 대학교를 들어가 4년을 꼬박 다녔다. 책을 읽으며 4년동안 들었던 수업의 기억을 되살리기 어려웠다. 왜일까?


무용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 쓸모 없는 것을 배우리라 도전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젊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자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는 걸.
      <공부의 위로> 곽아람


 내가 다닌 교육대학교는 무용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배웠고, 스스로도 교육과 관련없는 교양과목은 열심히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어떤 수업을 들으면  ‘아이들에게 이런 걸, 이렇게 가르치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오른다. 19살, 일반 대학교에 들어가 1년동안 아무런 목적없이 어디에도 쓰임이 있겠다 생각하지 않고 수업을 들었던 경험을 한 것 같다. 영문학의 이해, 신문방송학의 기초, 법과 문화에서 배운 임대차법, 나를 알아가는 국문학과 수업.. 수능 시험에도 나오지 않고 누군가에게 가르치기 위해 듣지 않아도 되는 수업. 무용해보였던 수업이 내 인생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졌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글을 쓰고나서 알았다. ‘프랑스 문학의 이해’가 인생의 지표가 되는 수업이었구나.

 <공부의 위로>의 부제는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정한 부제는 다르다. “무용함의 쓸모를 남긴 공부”로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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