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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희 Oct 18. 2022

머리를 잘랐다.

엄마는 생각보다 솜씨가 좋다.

머리를 잘라야지 생각한지 한달이 지났다. 허리를 굽히고 주렁주렁 매달린 머리카락을 감길때마다 빨리 잘라내고 싶었지만, 귀찮음이 한달을 견디고 있었다. 오늘은 꼭 잘라야 할 것 같아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천천히 챙겨먹고 미용실 갈 준비를 했다. 나는 미용실 가기전 머리를 감는다. 자기전에 늘 머리를 감지만, 가기전에는 두피를 더 청결하게 해야 할 것 같아 한번 더 감는다. 머리 밑을 박박 문질러 감고 썬크림을 바르고 옷을 차려입는다. 일요일, 집을 나서기전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또 미룰 순 없었다. 

    

코로나가 번진 후로 마스크를 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게 자연스러워졌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내 턱 위치가 어느쯤인지 불분명 한데도 미용사는 감으로 가려진 얼굴형태를 짐작하는건지 쓱쓱 서슴없이 가위질을 했다. 나중에 거울을 들고 확인할때도 역시 마스크를 쓴채 흠, 이정도면 된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계산대를 향하곤 했다. 마스크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 

    

젖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말리며 가장 가까운 미용실을 찾아갔다. 우리 동네에는 걸어서 갈수 있는 범위내에서 4개의 미용실이 있다. 보통 단골 미용실을 하나쯤 지정해 두는 편인데, 이 동네에 이사온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만족스러운 곳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근처 가까운 미용실을 대중없이 가는 편이다. 집앞 미용실, 길건너 미용실, 모두 문을 닫았다. 이제 남은 곳은 두곳. 동네를 크게 돌면 중간 중간 남은 두 미용실을 만날 수 있다. 일요일의 영향이 컸던 탓일까, 동네 미용실 4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따뜻한 가을볕에 머리카락이 반쯤 말라가지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나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가위를 살까. 어차피 컷만 할텐데 기술은 필요없잖아. 휴대폰으로 편의점에 미용가위가 판매하는지검색해 본다. 있을리 만무했다. 근처 큰 문구사는 일요일 휴무다. 인터넷으로 구매하려니 아무리 빠른 배송업체라도 저녁쯤이야 도착할터였다. 


가끔 그럴때가 있다. 마음먹었을때 해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고집이 생길때. 


현관을 들어서니 TV 앞에서 삶은 밤을 까먹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머리 자르고 왔어?”

“일요일이라 다 문을 닫았네. 엄마가 머리 잘라 줄래?” 

    

엄마는 내가 미용실을 다녀올때면 그 머리는 나도 자르겠다며 늘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감에 찬 소리를 해댔다. 생각해보면 항상 길이만 싹뚝 자르길 무한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단골 미용실이 나에겐 의미없긴 했다. 엄마말에 의하면 나는 곱슬머리기 때문에 조금 잘못 잘라도 크게 티나지 않을거라고.


미용실에 가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파마 언제 했어요?”


얼마전 종영한 작은아씨들에 나오는 김고은 헤어스타일이 바로 지금 내 헤어스타일이다. 물론 김고은은 파마한 머리라고 한다.

  

우리는 집안에 쓸만한 가위를 찾았고 그 중 실바구니에 담긴 빨간 손잡이에 꽤 큰 가위가 당첨됐다. 서랍에 있는 노란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바닥에는 신문지를 깔았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 앞을 쳐다봤다. 엄마는 이정도면 될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싹뚝 한 컷을 잘라냈다. 그 뒤로는 싹뚝싹뚝 경쾌한 가위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엄마는 평소에도 손재주가 많다. 요리는 물론이거니와 이리저리 꿰매고 고치는 것을 즐겨하며 곧 잘 만들어놨다. 사각사각 등짝에 부딪치는 가위의 딱딱한 부분이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초등학교때까지 엄마가 집에서 머리를 잘라줬던 것 같다. 그때는 은색에 얄팍한 미용가위 하나가 내 어린시절 모든 헤어를 담당했었다. 보자기를 꼭 쥐고 앉아 가만히 가위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주 작고 어린 내가 언제 이렇게 자라버리고, 젊고 고왔던 엄마는 언제 이렇게 늙어버린걸까.

      

튀어나 온 부분까지 꼼꼼히 잘라낸 후 빗질을 정성스레 끝낸 머리는 드디어 완성이 됐다. 엄마는 큰 거울을 들이밀며 뒷통수를 보라고 했다. 실을 자르던 가위로 투박하게 잘려지긴해도 길이가 고르게 맞춰져 그런데로 깔끔했다. 검지손가락 길이만큼 잘려졌는데도 한결 가벼워져 기분이 좋았다. 엄마 말대로 곱슬머리여서 끝이 저마다 동그랗게 구부러져 미용사가 잘랐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엄마는 무척 만족스러웠는지 나보다 더 신이나 내 뒷통수를 계속 쳐다봤다.      


“엄마 미용가위하나 주문할까?”     


만오천원. 머리 자르는 값을 아꼈다는 생각보다 오랜만에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행복감과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보다 더 큰걸 얻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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