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 위, 백지 속의 놀이

by 수연

이제 조금씩 아오리 사과 수확이 시작되었다.

사과 중에 제일 먼저 따는 사과가 아오리다. 첫 수확 때는 연두색과 밝은 초록색이었다가, 익어감에 따라 점점 노란빛으로 변해간다.

공판장의 분위기를 살피며, 그날그날 달라지는 사과 가격에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눈치게임 중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부모님이 농사를 잘 지으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건 둘째 치고, 공판장에서 상위권에 오른 적도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공판장에 갈 때면, “이건 누구네 사과다” 하고 인정받는 분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중에는 우리 사과가 없었다.


「오늘 사과 따나?」

밭에 가면, “따라가서 도울까?” 하고 묻는다. 사과 가고는 이제 내가 옮길 수 있는 나이인지라, 시간 날 때면 따라다닌다.


「오늘 공판장에 나가보소.」

「니가 갔다 와라, 아직 멀었다.」

「아 이보소. 당신이 좀 다니소.」


대부분 외부 볼일은 엄마가 보신다.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 일도, 농협의 볼일도 엄마 몫이었다. 울 아부지는 외모가 잘생기신 반면, 사람들과 어울리고 외부 활동을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반면 엄마는 본인 스스로가 외모에 자신 없어하셨다. 하지만 활동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향으로 동네 분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셨다.

우리 집에 찾아오시는 분들도 대부분 엄마를 보기 위해 오신다.

그만큼, 요즘 말로 하면 엄마는 진정한 인싸셨다.

물론 아버지와 모든 상의 후 결정하셨지만, 그 시작은 엄마였던 건 분명하다.


「작년에 쓰던 ‘가고’나 좀 손보소.」


그렇게 엄마는 공판장 볼일을 보시고 아버지에게는 숙제가 던져졌다.

가고는 비료포대로 만든 사과 나르는 바구니다.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바느질로 비료포대를 꿰매고 손질하셨다.


일요일이라 집에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마루에 상을 펴고, 부엌에서 반찬을 날랐다. 고들빼기김치와 된장에 배추쌈이 한 상 차려졌다.

파릇파릇한 한 철 나물들이 향긋한 참기름, 들기름 냄새와 함께 입맛을 돋워 주었다.


「시간 날 때 변소나 좀 푸소.」

「니가 좀 해라, 왜.」

「남들은 말 안 해도 알아서 한다는데 꼭 잔소리를 해야재.」


엄마의 잔소리가 아버지를 향했다. 그것도 밥상 앞에서 변소 푸는 일로다가. 가만있을 오빠가 아니다.


「아침부터, 밥상 앞에서 꼭 그런 얘기를 해야 돼.」


맡아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 독하고 찐한 향기를, 변소 한번 푸고 나면 하루 종일 집안에서 똥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가 얘기를 꺼내는 순간 머릿속 뇌가 코로 변소 푸는 냄새를 전달하는데 장난이 아니다.


「넘치면 똥 누지 마라 왜.」

「당신은 먹지 말고 사소 왜.」


대화 참 유치하시다.

어쨌든 조만간 아버지는 변소를 푸실 거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엄마가 말씀하시면 오래지 않아 결국 행동으로 옮기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남자치곤 은근 장난기 많으신 분이다. 반면 엄마는 여자로서의 애교는 없으신 편이었다. 묵뚝뚝한 엄마 옆에서 언제나 먼저 발동을 거는 쪽은 아부지였다.

우리 딸들은 모두 아부지를 좋아한다.

엄마의 한결같은 오빠 사랑도 한몫했지만, 아버지는 차별을 두지 않으신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장난 삼아 말씀하시는 “크면 누구랑 살래” 하면 우리 집 모든 딸들은 아부지였다.

오빠 빼고…

“니네 크면 아부지 땔꼬 살아라.”


엄마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는 진심, 삐침이 묻어 있다.


어쨌거나 오늘 밭에는 안 가도 될 것 같다.

동생과 나는 여유 있게 배신데이 느티나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른 아침, 벌써부터 몇몇 아이들이 나와 흙바닥에 땅을 넓히며 땅따먹기에 한참이었다.

중간에 끼어들 수 없으니, 옆에 앉아 훈수를 둔다.


나무 꼬챙이와 무기인 병뚜껑만 있으면 된다.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튕겨 그만큼 선을 긋고, 정한 횟수 안에 다시 내 땅으로 들어오면 끝이다.

소심한 사람은 조금씩 튕겨가며 땅을 넓히고, 과감한 사람은 자신 있게 병뚜껑을 날리며 땅을 넓혀 가지만, 마지막에 내 땅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땅도 넓히지 못한다. 나는 전자에 속했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눈곱만큼씩 땅을 넓혔는데,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쨌든 사소한 놀이 하나에서도 성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뚜껑을 튕기며 땅을 넓히던 그 놀이가 어른들이 판을 벌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야 니 내 땅 넘어왔다.」

「알았어, 지우면 되잖아.」


조심스레 겨우 그은 선을 다시 지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다, 지겨우면 또 다른 놀이에 집중했다.


배신데이는 우리 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했다.

5일장이 열릴 때면, 시내까지 30분을 넘게 걸어 다니는 어른들의 쉼 공간이자 우리의 놀이터였다.


여름이 시작된 지금, 우리가 놀고 있는 공간을 둘러싼 느티나무, 탱자나무, 상수리나무와 그 외 이름 모를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으며, 잠시 앉아 쉴 만한 큰 바위까지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공기놀이 할래? 돌 10개씩만 주봐.」

「야, 크기 비슷한 걸로 주워.」

「이만한 크기면 되나?」

「요 정도 크기로 하자.」


4명이 모여 길가에 굴러다니는 공깃돌을 줍기 시작했다.

모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땅에 박고 내 손에 맞는 공깃돌에 집중했다.

주운 공깃돌은 크기에 맞춰 다시 선별하고 편을 나눠 우리는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인제 하자.」

「땅 좀 정리하재이, 손가락 다 나간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놀이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새끼손가락 쪽 손바닥 아래가 아파온다.

흙바닥에서 공기를 잡기 위해 반복해서 쓸어 올리다 보면 피를 보기 일쑤였다. 한참을 참으며 놀이에 집중했지만, 더는 못하겠다.


「나 아퍼서 못하겠다. 손에서 피난다.」

「아직 몇 점 더 남았잖아.」

「나 안 해, 못 해」


그렇게 공기놀이는 1시간 만에 끝나고 말았다.


개인별, 단체별로 공기놀이 룰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개인전으로 5개의 공기를 사용할 때 우리 동네는 1단부터 6단까지 있었다.

먼저 1개를 줍고, 그다음 2개, 3개, 4개를 차례로 집은 뒤, 한 손으로 ‘동굴’을 만들어 남은 돌들을 모두 그 안에 넣는다.

단, 지정한 하나를 건드리지 않고 동굴 속으로 모두 넣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공깃돌을 손등에 올렸다가 한 번에 잡으면 성공이다. 떨어뜨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아픈 손가락을 뒤로하고, 나는 남자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멀찍이서 구경만 했다.

구슬과 구슬이 부딪칠 때마다 나는 경쾌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구경꾼인 나에게도 그저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흙바닥에 구멍을 내고 구슬을 튕겨 넣으면 된다. 남자아이들은 구슬 하나, 하나가 소중한 모양이다.

놀이가 끝날 때쯤 구슬 하나로 싸우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 집에 갔다 오께, 니는 안 가나?」

「응 좀 더 있다 갈라고, 빨랑 갔다 와.」

「응, 밥만 먹고 오께.」


배신데이서 우리 집이 제일 가까웠다. 귀찮은 아이들은 그대로 놀기 바빴다.

동생과 나는 집으로 향했다.

옆에 보이는 환삼덩굴을 따다가 가슴팍에다 냅다 붙이고, 앞서 가던 동생 옷에도 붙여본다.

단풍과 손바닥 모양처럼 생긴 환삼덩굴은 줄기는 가시로, 잎은 거친 털이 있어 옷에 잘 붙었다. 가는 곳마다 눈에 보이니 생각도 않고 따다 붙여본다.


아침에 오늘 사과는 따지 않는다고 했지만, 부모님 모두 집에 계시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아침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을 마루에 가져와 먹었다. 언니, 오빠도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안 매운 고추 좀 따와 봐.」

「내가 매운지 안 매운지 어떻게 알아.」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 작은 텃밭에 고추가 한창 익어갔다.


허기를 달래고 다시 고추밭으로 갔다. 겨울을 빼고는 염소도 볕 좋은 고추밭에 매어 두는 경우가 많았다.

모퉁이에 매어둔 염소의 곁으로 다가가 괜스레 괴롭혀 본다.

염소는 엄마의 부수입이자, 한철 가족의 건강 보양식이었다.


매년은 아니지만, 한겨울이면 마당 한켠에 있는 사과나무에 한참 목을 매달아 놓으면 그 이후 엄마는 얼음을 깨고 칼로 염소의 가죽과 고기를 손질하셨다.

아부지도 자신 없어하는 것을 엄마는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내셨다. 그날이면 염소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한참 악몽을 꾸던 때라 더 두렵다.


엄마를 뭐라 할 수 없는 건, 고기는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염소 특유의 냄새가 그대로 고기에 배어 있어, 지금은 손도 안 가지만 그땐 그렇다. 그래서일까, 염소는 다른 동물과 다르게 주인에게도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염소는 가장 오랫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낸 동물이다.


겨울이 올 때쯤 내다 팔기도 하고, 봄이 올 때면 다시 새끼 염소를 사 들였다.

한 겨울에 새끼가 태어나면 엄마는 방 안에 새끼를 두기도 하고 장작불 곁에서 엉덩이를 데워 주기도 했다.


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동생과 나는 친구와 약속한 배신데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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